27년을 함께 했지만…장례식조차 갈수 없었던 헵번의 슬픈 사랑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중 한 사람인 스펜서 트레이시(1900~1967)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를 27년간 옆에서 돌봐준 한 여인은 정작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제 막 60살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5년 동안의 간병으로 수척할 대로 수척해졌고 가녀린 어깨는 무겁게 내리누르는 슬픔을 감당하기에 버거워보였다. 그렇다고 차마 사랑하는 이를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침 일찍 병원 영안실로 발길을 옮겼다. 마침 인부들이 고인의 관을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위해 운구차에 실으려던 참이었다. 그는 사내들을 도와 함께 트레이시의 관을 차로 옮겼다. 이내 부릉부릉 대는 차의 엔진소리가 텅 빈 영안실의 정적을 깬다. 여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순간이었다.

캐서린 헵번(1907~2003)과 트레이시 두 톱스타 간 세기의 로맨스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상한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트레이시는 단 한 번도 헵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자신을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봐준 헵번을 그저 ‘놀라운 나의 친구’라고 지칭할 따름이었다.

여기에는 트레이시의 개인사적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트레이시는 무명시절이던 20대 초반 기차 안에서 만난 같은 연기자 루이즈 트레드웰과 웨딩마치를 올렸다. 정확히 9개월 뒤 첫 아이 존이 태어났고 둘 앞에는 행복한 나날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신의 질투가 시작됐다. 불행하게도 아이가 청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치유책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나 의사들로부터 아이에게서 평생 “엄마”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그는 트레이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트레이시의 충격도 루이즈 못지않았다. 그러나 루이즈는 더욱 더 강해졌지만 트레이시는 깊은 좌절의 수렁에 빠져 술과 여자에 탐닉하면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 로레타 영, 잉그리드 버그만, 베트 데이비스에게 차례로 빠져든 것도 그때였다. 그런 그를 수렁에서 건져낸 사람은 헵번이었다. 둘은 영화의 파트너로 처음 만났다.

항간에는 첫 만남 때 헵번이 작업을 걸어오는 단신의 트레이시에게 “당신한테는 내가 너무 크지 않아요”라고 튕겼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였다. 헵번은 트레이시를 처음 본 순간 가슴이 떨려 말 한마디 못한 채 바보가 되고 말았다. 자기 주장이 센 인텔리 여성의 이미지 강했던 그가 트레이시 앞에서 유순한 양이 된 것이다. 처음에 트레이시는 헵번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질하지 않은 손톱은 너저분했고 보이시한 복장도 탐탁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선 헵번이 레즈비언이라는 소문까지 나돌던 터였다. 그런 헵번에게 공연자로서의 예의를 표했을 뿐이었다. 헵번이 트레이시의 포로가 된 데에는 이유가 따로 없었다. 그냥 그의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마음이 설레었다.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헵번과 두 사람은 곧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년의 5년간을 제외하고 22년간 한 번도 동거하지 않았다. 가까운 동네에 살았을 뿐 살림을 합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루이즈와 함께 아들의 장애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독교도로서 혼외관계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헵번과는 영화 공연자로서 외에는 어떤 기념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루이즈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피하려 했다. 헵번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지만 공개적으로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행인 것은 헵번은 단 한 번도 트레이시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헵번은 처음 결혼에 실패한 후 자신은 한 남자의 부인이 될 수도, 아이의 엄마도 될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기로 다짐한 터였다. 그러나 헵번이 트레이시를 대한 태도는 부인의 역할을 넘어 어머니의 희생적인 역할 그 이상이었다. 그는 트레이시의 끊임없는 술주정과 폭언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헵번을 사랑하는 팬들은 그의 한 남자에 대한 헌신적인 삶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4회 수상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그는 여느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거부와 결혼, 신데렐라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평범한 남자와의 사랑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헵번은 동료 여배우 로렌 바콜이 말한 대로 트레이시를 행복하게 해주는 데서 최고의 행복감을 느꼈다.

타산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헵번이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평범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