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미국의 청춘 스타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에 나오는 치킨 게임 장면은 지금까지도 종종 인용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치킨 게임은 약간 변형된 형태다. 제임스 딘과 연적 관계인 또 다른 청년은 마주보고 차를 모는 게 아니라 절벽을 향해 나란히 질주한다. 차가 절벽에 가까워지면서 먼저 차에서 뛰어 내리는 사람이 지는 식이다. 여자 친구 앞에서 누가 더 용감한지를 겨루고 싶었던 철부지 젊은이들의 무모한 자존심 싸움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다.
치킨 게임은 이처럼 대중에겐 영화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에서 그리고 언론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정치 분야에서 치킨 게임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다. 동서 냉전이 극을 향해 달리던 1962년 당시 소련이 미국을 겨냥해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들자 미국이 이에 반발, 한때 양국이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내달았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자존심을 걸고 기싸움을 벌이다 자칫 공멸의 길을 택할 뻔했다.
요즘엔 치열한 산업 내 경쟁양상을 이 오랜 단어를 빌려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해 최근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반도체 치킨 게임이 대표적이다. 독일 대만 일본 미국 한국 D램 업체 간 ‘누가 죽나 보자’ 식의 설비증설 경쟁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정도가 승자로 남았다.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태양광 산업 역시 치킨 게임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개성공단 남측 인원의 전원 철수 결정으로 공단이 폐쇄 위기에 처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남북한 간 치킨게임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치킨 게임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 자존심 때문에, 또는 상대로부터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쓰는 벼랑끝 전술이다. 근로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내려진 어려운 결정을 치킨 게임이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북한이 치킨 게임을 유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벼랑끝 전술도 그렇지만 치킨 게임의 결말도 대체로 좋지 않다. 북한이 하루빨리 벼랑에서 내려오고 치킨 게임도 그만두길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