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빨간 우체통
언젠가부터 빨간 우체통이 보기 힘들어졌다. 클릭 한번에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가끔 설레는 맘으로 편지를 넣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길가에 놓인 빨간 우체통, 아버지 손에 끌려 들어간 동네 목욕탕, 추운 겨울 아랫목의 따뜻함 등은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잊혀진 옛 추억으로만 떠오른다. 새로운 것은 설렘과 경이로움을 주지만 분명 옛것에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가치와 교훈이 있음을 깨닫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랄까.

오늘날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정보기술(IT)과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21세기의 역동적 변화는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편의성을 한층 높여준다. ‘제2의 산업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산업 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의 출현으로 개인과 기업을 넘어 국가의 효율성과 생산성까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됐다.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창조경제’도 결국은 이런 혁신과 변화의 연장선상에 놓인 한 테마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급속한 변화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마음 한쪽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변화와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모두가 더 편하고 잘살자는 것이겠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시대와 무관하게 통용되는 근본 가치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가수의 왕으로 불리는 조용필 씨의 신곡이 세대를 초월해 각광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언론 보도는 ‘영원한 오빠’에 대한 찬사로 그려지고 있으나 내 입장에선 좀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혹시 이런 노력이 갈수록 벌어지는 세대 간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혀 서로 균형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와 이야기할 때면 놀라울 정도로 옛것과 역사에 대한 지식, 관심이 부족해 우려될 때가 많다.

총명한 젊은 세대가 21세기의 역동성에 맞춰 시대를 선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전 세대와 소통하며 전 세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되돌아보고 배우는 기회를 꼭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첨단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세계를 바삐 오가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설레는 맘으로 손수 편지를 넣던 빨간 우체통이 주는 정서적 가치와 아버지 손에 끌려 따라간 목욕탕이 소통을 위해 매우 효과적 장소였음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깨닫고 있다.

강성욱 < GE코리아 대표 Chris.Khang@g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