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사상 최대 회사채 발행(비금융 회사 기준)에 나서기로 한 이유는 뭘까. 애플이 지난달 30일 최대 160억 달러(약 17조6700억 원)의 돈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시한 이후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애플이 가진 현금 규모는 1450억 달러(약 163조 원)로 한국의 지난해 예산(325조 원)의 절반에 달한다. 회사채 발행 목표로 제시한 주주 배당과 자사주 취득을 위한 3년간의 재원 1000억 달러보다 많다.

애플이 돈을 빌려 주가 부양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 때문. 애플이 보유한 현금 중 미국 내에 있는 돈은 450억 달러에 불과하다. 1000억 달러는 해외 사업장에 쌓여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돈을 미국 내로 들여올 경우 최고 35%의 법인세를 물어야 해 최대 350억 달러(약 39조 원)를 세금으로 낼 수도 있다.

피터 오펜하이머 애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23일 “지금까지 해외에서 창출한 막대한 이익을 미국 내로 송금하면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35%인 세율을 일시적으로나마 5%로 떨어뜨려 해외에 쌓여 있는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려는 것은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의 숙원이다.

시장에선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이 문제와 관련해 애플과 공동 전선을 형성, 미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회사채로 차입에 나설 때 드는 금융비용이 세금으로 내야 할 돈보다 적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애플의 채권 발행 소식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며 53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 이자율은 예상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초 미국 국채보다 0.35%포인트 높게 책정될 것으로 예상됐던 3년 만기 고정금리 채권의 이자율이 0.25%포인트 안팎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