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시간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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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5월의 봄
뜨락 만물과 대화하던 날의 기억
다시 못 볼 이 순간 눈에 담아야지"
이순원 소설가 sw8399@hanmail.net
뜨락 만물과 대화하던 날의 기억
다시 못 볼 이 순간 눈에 담아야지"
이순원 소설가 sw8399@hanmail.net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식을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보고 듣는다. 사람이 육성으로 들려주는 세상 소식은 거의 없다. 약간의 학문적 지식과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 정도만 육성을 통해 들을 뿐이다.
텔레비전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고 라디오도 귀하고 신문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어른들이 세상 소식을 듣는 방법은 장날 읍내시장을 통해서였다. 오늘 시장에 갔더니 어느 동네에 사는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또 시장에 이런 종류의 물건들이 나왔더라 하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 중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포함돼 있고, 때로는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소식도 전해졌다.
대관령 아래쪽에 있는 우리 동네 산엔 아직 두릅이 흐드러지지 않았는데 남쪽에서 올라오는 두릅들은 잎이 아주 좋더라, 하는 얘기도 시장에 난 물건을 보고서야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어떤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듣는다.
꽃소식 역시 그렇다. 2월이면 제주의 유채꽃 소식이 전해지고, 3월이면 진해와 쌍계사의 벚꽃 소식이, 또 구례 산수유 마을의 노란 꽃소식이 화면과 함께 전해진다. 사진들을 얼마나 잘 찍는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저마다 자기가 사는 우리 동네의 꽃은 아직 필 생각조차 않는데 이미 넘쳐나는 꽃소식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러다 정작 우리 동네 벚꽃이 피고 산수유가 피고 자두꽃이 피고 복사꽃이 피고 배꽃이 필 때는 그동안 텔레비전을 통해 멀미날 만큼 봐온 꽃소식이 이미 심드렁해진 다음이다.
동네에 피어나는 꽃들은 텔레비전 속에서 봐왔던 꽃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동네 나무들이야 저마다 한 해의 첫 꽃을 피우는 것이겠지만 느낌이 꼭 장이 끝난 다음 살 사람도 없는 시장에 뒤늦게 내다놓은 파장 물건 같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남의 동네 꽃들의 화려함에 취한 다음이라 마치 피어야 할 때 피지 못하고 뒤늦게 피어난 한 해 꽃의 끝물처럼 시시하다.
그러다 꽃이 진 다음 5월이 되어 나무들이 잎을 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또 다르다. 내가 일하는 곳 2층 서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단지 안의 봄 풍경이 그렇게 화사할 수 없다. 희고 붉은 철쭉이 만개한 가운데 정원에 선 온갖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키우고 있다. 꽃도 예쁘지만, 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때가 오월이다. 나뭇잎이 피어나고 자라는 소식은 꽃소식처럼 전해지지 않아서인지 하루하루 잎이 자라고 푸르러지는 모습이 여간 새롭지 않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갖가지 꽃나무와 잎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논밭에 나가 있고, 그러면 혼자 뜨락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마당가의 나무들과 발밑을 지나는 개미들, 온 세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데도 제풀에 놀라 홰를 치는 닭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림자를 길게 디밀어오는 햇빛, 그 사이로 부는 바람에게 혼자 말을 건네곤 했다. 내 눈에 보이는 그것들의 모습, 또 그것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을 나 혼자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바람에게, 피어나는 잎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다 가끔 옆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무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느냐고 한마디씩 듣기도 한다. 그러나 창밖을 내다 보면 혼자가 아니다. 동네 뒤쪽 산책길에라도 나서면 더욱 그렇다. 걸음이야 혼자 걷지만 5월의 봄이 자꾸 말을 붙여온다. 꼭 숲속이 아니더라도 나무가 있는 거리에 나서보면 사람들이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바라보면 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꽃과 달리 잎은 유난스럽지 않은 대신 언제 피어나도 부족함이 없다. 지금 우리 곁을 지나가는 시간의 발자국이 연둣빛 속에 보이는 듯하다. 눈으로 저 시간의 흔적을 마음에 담는다. 이제 저 시간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순원 < 소설가 sw8399@hanmail.net >
텔레비전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고 라디오도 귀하고 신문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어른들이 세상 소식을 듣는 방법은 장날 읍내시장을 통해서였다. 오늘 시장에 갔더니 어느 동네에 사는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또 시장에 이런 종류의 물건들이 나왔더라 하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 중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포함돼 있고, 때로는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소식도 전해졌다.
대관령 아래쪽에 있는 우리 동네 산엔 아직 두릅이 흐드러지지 않았는데 남쪽에서 올라오는 두릅들은 잎이 아주 좋더라, 하는 얘기도 시장에 난 물건을 보고서야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어떤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듣는다.
꽃소식 역시 그렇다. 2월이면 제주의 유채꽃 소식이 전해지고, 3월이면 진해와 쌍계사의 벚꽃 소식이, 또 구례 산수유 마을의 노란 꽃소식이 화면과 함께 전해진다. 사진들을 얼마나 잘 찍는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저마다 자기가 사는 우리 동네의 꽃은 아직 필 생각조차 않는데 이미 넘쳐나는 꽃소식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러다 정작 우리 동네 벚꽃이 피고 산수유가 피고 자두꽃이 피고 복사꽃이 피고 배꽃이 필 때는 그동안 텔레비전을 통해 멀미날 만큼 봐온 꽃소식이 이미 심드렁해진 다음이다.
동네에 피어나는 꽃들은 텔레비전 속에서 봐왔던 꽃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동네 나무들이야 저마다 한 해의 첫 꽃을 피우는 것이겠지만 느낌이 꼭 장이 끝난 다음 살 사람도 없는 시장에 뒤늦게 내다놓은 파장 물건 같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남의 동네 꽃들의 화려함에 취한 다음이라 마치 피어야 할 때 피지 못하고 뒤늦게 피어난 한 해 꽃의 끝물처럼 시시하다.
그러다 꽃이 진 다음 5월이 되어 나무들이 잎을 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또 다르다. 내가 일하는 곳 2층 서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단지 안의 봄 풍경이 그렇게 화사할 수 없다. 희고 붉은 철쭉이 만개한 가운데 정원에 선 온갖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키우고 있다. 꽃도 예쁘지만, 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때가 오월이다. 나뭇잎이 피어나고 자라는 소식은 꽃소식처럼 전해지지 않아서인지 하루하루 잎이 자라고 푸르러지는 모습이 여간 새롭지 않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갖가지 꽃나무와 잎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논밭에 나가 있고, 그러면 혼자 뜨락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마당가의 나무들과 발밑을 지나는 개미들, 온 세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데도 제풀에 놀라 홰를 치는 닭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림자를 길게 디밀어오는 햇빛, 그 사이로 부는 바람에게 혼자 말을 건네곤 했다. 내 눈에 보이는 그것들의 모습, 또 그것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을 나 혼자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바람에게, 피어나는 잎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다 가끔 옆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무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느냐고 한마디씩 듣기도 한다. 그러나 창밖을 내다 보면 혼자가 아니다. 동네 뒤쪽 산책길에라도 나서면 더욱 그렇다. 걸음이야 혼자 걷지만 5월의 봄이 자꾸 말을 붙여온다. 꼭 숲속이 아니더라도 나무가 있는 거리에 나서보면 사람들이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바라보면 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꽃과 달리 잎은 유난스럽지 않은 대신 언제 피어나도 부족함이 없다. 지금 우리 곁을 지나가는 시간의 발자국이 연둣빛 속에 보이는 듯하다. 눈으로 저 시간의 흔적을 마음에 담는다. 이제 저 시간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순원 < 소설가 sw83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