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블레어 하우스
벌써 60여년 전인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오후 7시45분. 미국 워싱턴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주말 휴양지에서 급히 날아온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 존슨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 등 수뇌부가 총집결했다. 북한의 전면 남침이 시작된 지 29시간이 넘었고 문산과 의정부, 춘천, 강릉은 이미 방어선이 뚫린 상태였다. 이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마라톤회의에서 트루먼은 결국 6·25 참전을 결정했다.

이 역사적인 결단의 현장은 백악관 맞은편에 있는 블레어 하우스였다. 평소 같으면 백악관에서 할 회의였지만 마침 보수공사 때문에 이곳에서 회의가 열렸던 것이다. 처칠 영국 총리의 유명한 ‘알몸 외교’도 이곳에서 펼쳐졌다. 처칠이 숙소에서 목욕을 끝내고 알몸으로 거닐고 있을 때 문을 연 루스벨트가 깜짝 놀라 몸을 돌리려 하자 처칠은 “나는 당신에게 숨길 게 아무것도 없소”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후 둘은 ‘절친’이 됐다.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루스벨트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처칠에게 “당신과 같은 시대에 산다는 게 정말 즐겁다”고 화답한 것도 이곳에서 만든 두 사람의 추억 덕분이었다.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이 여기에서 탄생했고,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관련 ‘블레어 하우스 협정’도 이곳에서 타결됐다. 원래는 개인주택이었지만 2차대전 후 영빈관 건물로 탈바꿈했다. 전쟁통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레이건과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부인 낸시 여사와 베티 여사가 문상객을 맞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은 대부분 이곳에 묵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기에서 2박3일을 보낸다. ‘아버지 박 대통령’이 1965년 미국 방문 때 사용한 숙소를 48년 만에 다시 쓰는 ‘딸 박 대통령’의 감회는 아주 특별할 것이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반세기 전 한·미 동맹의 바닥을 다지느라 밤잠을 설쳤던 곳에서 다가올 반세기를 내다보며 풍성한 미래 비전을 구상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국빈 방문이 아닌 실무 방문인데도 국빈 숙소인 영빈관을 제공한 미국 정부의 특별대접 역시 이례적이다. 이에 화답하듯 박 대통령은 오늘 한·미동맹 60주년 기념만찬에 6·25 참전용사와 주한미군 근무자 등 300여명을 초청한다고 한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구호물품으로 연명하던 최빈국이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경제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대한민국을 지원했던 은인들에게 한턱 쏘는 대통령의 표정이 얼마나 뿌듯할 것인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