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고가품’은 다르다. 단순히 비싼 것을 명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공통점은 쉽게 디자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고,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화를 주지 않아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은 명품이 풍기는 ‘도도함’에서 사람들은 소비 욕구를 느낀다. 특정 제품을 갖고 싶어 안달하고, 소유하면 오랫동안 만족하고, 그 물건 자체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명품들이 주는 마법이다.

몽블랑 만년필 중에서도 유명한 ‘마이스터스턱(Meisterstuck)’은 1924년 처음 출시된 이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통일 조약식 등 인류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단골로 등장한 제품이다. 검은색 몸통에 흰색 육각별 로고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쓰던 것과 지금 내가 쓰는 것이나 똑같다. 같은 디자인이지만 대를 이어가며 만족하는 펜이 몽블랑인 것이다. 필기감이나 브랜드 속에 담긴 매력적인 히스토리도 한몫했겠지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디자인 그 자체가 매력이다. 더 꾸미지 않아도, 새로운 시대 감각을 덧붙이려 애쓰지 않아도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인 것이다.

1837년 고급 마구용품에서 시작한 에르메스의 명성도 마찬가지다. ‘명품’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품질과 디자인의 가방을 내놓는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같은 대표 제품은 깜짝 놀랄 만한 가격에도 제품을 사려는 대기자가 늘 줄을 선다. 1984년 첫선을 보인 이후 3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버킨백은 계절이나 그해 트렌드에 따라 색이나 무늬, 소재 등에 변화를 주지만 고유의 디자인은 그대로다.

명품으로 불리는 제품일수록, 오랜 역사와 뚜렷한 디자인 철학을 가진 브랜드일수록 제품의 디자인은 천천히 바뀐다. 대중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야금야금 달라진다. 이들이 제품 디자인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은 그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신감과 확신이 없을 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법이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디자인을 싹 바꾸는 것은 디자인 철학과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새로 나온 삼성 갤럭시S4를 보면서 디자인 변화에 대한 강박증을 버린 것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더 쉬울 수 있다. 제품에 자신이 있다면 디자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매년 수시로 바뀌는 디자인이라면 그 제품은 패스트푸드와 같다. 소비자 입장에서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흥미로움은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아끼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고수하는 제품을 정보기술(IT) 시장에서도 보길 바랐다.

갤럭시S4는 네 번째로 나온 제품이다. 세 번의 전작(前作)을 통해 디자인이 진화해왔다는 의미다. 삼성은 갤럭시S4에 이르러 갤럭시S 시리즈의 스타일을 찾았다. 전작의 디자인 요소를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다.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디자인 분야다.

비교 상대는 ‘남’이 아니다. ‘경쟁작의 디자인보다 나은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디자인을 직접 한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전은경 월간 <디자인>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