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양적완화'에 대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경고
“요즘 시장에 안전자산 같은 것은 없다.”(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자)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정책은 핵폭탄이다.” (스탠리 드러켄밀러 소로스펀드 전 최고투자책임자) “일본은행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다단계 금융사기의 반복이다.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카일 배스 헤이먼캐피털 창업자)

월스트리트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Fed,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아이라 손 투자 콘퍼런스에서다. 영향력 있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매년 투자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이 콘퍼런스는 2008년 5월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이 리먼브러더스의 회계상 오류를 처음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매니저들이 이 행사에서 쏟아낸 발언은 매년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언론 중 단독으로 취재한 이날 콘퍼런스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는 중앙은행이다. 운용자산 규모가 200억달러에 달하는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자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90%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앞으로 들어갈 복지비용을 감안하면 일본의 부채비율은 800%, 미국과 유럽은 50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싱어는 “선진국들은 장기적인 지급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데 ‘돈 찍어내기’라는 위험한 정책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며 “성장을 위해 감세, 규제 완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요즘 시장에 안전자산이란 없다”고 경고했다. “양적완화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온 미국과 일본 국채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싱어는 이어 “그동안 주식과 채권을 보유한 부자들은 돈을 벌었지만 일반 국민은 생필품 사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양적완화는 왜곡된 경기회복과 계급 투쟁만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소로스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출신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Fed의 양적완화 정책은 자산 가격을 왜곡하고 있는 핵폭탄”이라며 “Fed가 양적완화를 중단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순간 주식시장 랠리는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품시장의 슈퍼사이클이 끝났다고 진단했다. 드러켄밀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상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됐기 때문”이라며 “중국의 새 지도자들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제 성장 전략을 바꾸고 있는 만큼 상품시장의 상승세는 우리 생애 동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일 배스 헤이먼캐피털 창업자는 일본 금융완화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유럽 재정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배스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를 (세계 경제의) 새 보안관으로 묘사하면서 “금융완화 정책으로 2년 안에 엔화가 달러당 120엔까지 떨어지고 물가상승률 2%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70년간 지속된 일본 채권 랠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내가 만나본 일본인들은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은 일본이 지급 불능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서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유럽의 재정 취약국들과 같은 심각한 부채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