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성추행 당했다" 경찰 신고…尹, 짐 놔둔 채 황급히 귀국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직후 미국 수도 한복판에서 성추행 혐의로 미국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데다 이 조사를 피해 서둘러 귀국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미국 동포사회는 나라 망신을 시킨 처사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 숙소 인근에서…

워싱턴 경찰국에 접수된 사건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여성(대사관 인턴사원)은 지난 7일 오후 9시30분~10시 W호텔 내부에서 용의자(56·남성)가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GRABBED HER BUTTOCKS WITHOUT HER PERMISSION)’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W호텔은 백악관에서 300m, 박 대통령의 숙소인 블레어하우스(영빈관)에서 700m 떨어져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사건 발행 후 한참 지난 8일 낮 12시30분 현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경찰의 사건보고서에 나와 있다. 이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현지 외교 소식통들과 당시 현장에 있었던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7일 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만찬 행사가 끝난 후 W호텔로 이동,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졌으며 여기에 피해 여성도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 여성은 대통령 방미 행사를 위해 대사관에서 임시 채용했으며 윤 전 대변인의 수행비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이튿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으며 새벽 5시께 비틀거리면서 기자단과 윤 전 대변인이 숙소로 이용한 페어팩스호텔로 들어오는 것을 청와대 일부 기자들이 목격했다. 윤 전 대변인은 호텔로 돌아온 뒤에도 피해 여성을 호텔 룸으로 한 차례 더 불렀다. 피해 여성은 처음에 윤 전 대변인의 호출을 거부했지만 그가 욕설을 퍼붓자 어쩔 수 없이 룸으로 갔고, 룸에서 윤 전 대변인은 거의 알몸 상태로 있었다는 게 피해 여성의 진술이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부분에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며 “가해자는 샤워를 마친 후 속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때 인턴 여성이 보고를 위해 올라왔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호텔에 짐 놔둔 채 귀국행

윤 전 대변인은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이날 오전 8시 박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조찬 회동이 열린 헤이애덤스호텔에 7시30분께 초췌한 모습으로 도착하는 모습이 본지 기자에게 목격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울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시 조찬 회동에 가 있던 윤 전 대변인에게 ‘사실이냐’고 물었고 윤 전 대변인이 ‘별일 없었고 사실무근이다’고 했다”며 “하지만 이후 미국 문화원 관계자를 통해 피해 여성이 현지 경찰에 고발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다시 윤 전 대변인에게 전화로 알려줬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은 이 전화를 받고 대변인실 소속 모 행정관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고, 행정관은 “미국 경찰에 소환돼 조사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수사공조 체제가 돼 있어 귀국해 조사받는 경우도 있으니 본인이 판단해 결정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이 전화를 끊고 귀국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후 호텔에 짐을 놔둔 채 곧바로 택시를 타고 덜레스공항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변인은 이 때문에 이날 오전 10시30분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때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 경찰이 조사를 위해 윤 전 대변인을 접촉했으나, 윤 전 대변인이 대통령 방미 수행단 일원이라고 말해 직접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윗선은 언제 알았나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먼저 보고됐다. 당시 이 수석은 상하원 합동연설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이 수석은 “급히 차를 타고 미 의회 의사당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여유가 없었고 같은 장소에 있었던 윤 전 대변인도 ‘잘 모르겠다’고만 해 대변인실에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수석이 윤 전 대변인의 귀국 소식을 들은 것은 이날 낮 12시가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 보고한 것은 다음날 오전 9시10분께였다. 이 수석은 “워싱턴 행사가 끝나자마자 LA로 이동했고, 이후 동포 만찬 등 공식일정이 쉼 없이 이어진 데다 추가 상황 파악도 필요해 보고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보고를 받자마자 화를 내며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경질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엇갈리는 진술

윤 전 대변인은 귀국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긴급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 소명 과정에서 피해 여성과의 신체 접촉을 인정하면서도 성추행 의혹은 부인했다고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윤 대변인은 ‘성추행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요지로 청와대에 해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 전 대변인이 신체 접촉 자체는 인정한 것 같다”며 “그러나 엉덩이를 ‘움켜쥔’ 게 아니라 ‘툭툭 친’ 정도라고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LA=장진모 특파원/정종태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