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속 사람, 사랑 스토리] 화상 입은 아들, 아이보험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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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의 시작으로 모두 기대감에 들떠 있던 2002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10평 정도의 좁은 집에서 4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은 입을 옹알거리며 막 걷기 시작했다. 온갖 작은 말썽을 부릴 시기였다.
당시 난 2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경추 손상의 중증 장애를 입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명절인 설 연휴의 시작으로 다른 날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그 편안함은 아들의 작은 사고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아내는 아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물을 끓여놨다. 아들은 뛰어놀다 끓인 물이 있는 쪽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중심을 잡느라 양손을 목욕물 속에 넣게 됐다. 결국 양손과 팔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깜짝 놀라 아들의 붉게 변한 양손과 팔의 환부에 수돗물을 부었다.
소방관의 도움으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화상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들을 병원에서 안내해준 입원실로 옮겼다. 6명가량의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다인실이었다.
아들은 계속되는 환부 소독과 주사 접종 때문에 끊임없이 울었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너무 운다면서 눈총을 줬다. 독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6시간에 걸친 수술이 이어졌다. 아들은 실신 직전까지 울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 며칠 후 아들은 퇴원할 수 있었다. 병원비는 300만원 가까이 나왔다. 보험사에 청구해 병원비를 무리없이 충당했다. 병원비보다 조금 많은 보험금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을 때 가입한 어린이보험이었다. 내 교통사고로 받은 보험금과 보상금의 일부로 가입했다.
물론 그때도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한 보험이었다. “어려울수록 아이보험은 꼭 있어야 한다고”고 권유했던 그분이 우리 가족의 수호천사인 셈이다. 비록 아들의 양팔에는 심한 흉터가 남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으로 후유증 없이 열심히 공부와 운동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언제가 아들이 “아빠, 나 공군장교가 되고 싶은데 비행하면 수술 부위가 터져서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부주의했다는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나마 화상 부위가 얼굴이 아닌 점에 감사했다.아찔하면서 다행인 기억이다. 보험과 인연이 없었더라면 소득조차 변변치 않은 우리가 치료비와 계속 이어졌던 흉터 제거 수술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은 2012년 삼성생명이 주최한 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당시 난 2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경추 손상의 중증 장애를 입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명절인 설 연휴의 시작으로 다른 날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그 편안함은 아들의 작은 사고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아내는 아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물을 끓여놨다. 아들은 뛰어놀다 끓인 물이 있는 쪽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중심을 잡느라 양손을 목욕물 속에 넣게 됐다. 결국 양손과 팔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깜짝 놀라 아들의 붉게 변한 양손과 팔의 환부에 수돗물을 부었다.
소방관의 도움으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화상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들을 병원에서 안내해준 입원실로 옮겼다. 6명가량의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다인실이었다.
아들은 계속되는 환부 소독과 주사 접종 때문에 끊임없이 울었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너무 운다면서 눈총을 줬다. 독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6시간에 걸친 수술이 이어졌다. 아들은 실신 직전까지 울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 며칠 후 아들은 퇴원할 수 있었다. 병원비는 300만원 가까이 나왔다. 보험사에 청구해 병원비를 무리없이 충당했다. 병원비보다 조금 많은 보험금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을 때 가입한 어린이보험이었다. 내 교통사고로 받은 보험금과 보상금의 일부로 가입했다.
물론 그때도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한 보험이었다. “어려울수록 아이보험은 꼭 있어야 한다고”고 권유했던 그분이 우리 가족의 수호천사인 셈이다. 비록 아들의 양팔에는 심한 흉터가 남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으로 후유증 없이 열심히 공부와 운동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언제가 아들이 “아빠, 나 공군장교가 되고 싶은데 비행하면 수술 부위가 터져서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부주의했다는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나마 화상 부위가 얼굴이 아닌 점에 감사했다.아찔하면서 다행인 기억이다. 보험과 인연이 없었더라면 소득조차 변변치 않은 우리가 치료비와 계속 이어졌던 흉터 제거 수술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은 2012년 삼성생명이 주최한 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