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외국계 몰아주기 논란
금융위원회가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 진출을 돕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을 계기로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운용사의 해외 진출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 외국계가 ‘싹쓸이’하고 있는 국민연금 해외투자 위탁운용 시장에 국내 운용사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런 식으로 해외 투자 경험이 쌓이다 보면 향후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할 수 있는 ‘국가대표급 자산운용사’가 나올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정부보다 국민연금이 나서줘야”

금융위는 지난 10일 삼성, KB 등 국내 자산운용사 대표 및 금융투자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회사 해외 진출지원을 위한 TF’ 첫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해외 진출을 도와줄 주체로 정부가 아닌 국민연금을 꼽고 있다. 국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국민연금만이 국내 운용사에 해외투자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4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324조원에 이른다. 이 중 해외 주식투자 규모는 25조원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운용사가 주로 맡는 국내 주식투자(35조원 규모)와 달리 해외 주식투자는 50여개 외국계 운용사가 독식하고 있다. 운용자산 규모, 인력, 수익률 등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뛰어넘는 국내사가 한 곳도 없어서다.

한 운용사 대표는 “싱가포르투자청 등 해외 국부펀드들은 자국 운용사를 지원하는 항목을 두고 있다”며 “국내 연기금도 쿼터제를 적용해 국내 운용사들이 해외 투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도 “국내 운용사들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데 국민연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주면 국내 자산운용업계뿐 아니라 국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과낸 국내 운용사 수두룩

자산규모나 운용인력 측면에선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운용사에 못 미치지만, 운용 성과만 놓고 보면 외국사를 능가하는 업체도 상당수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운용사들이 그렇다.

펀드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아시아퍼시픽 주식형펀드의 최근 1년 운용수익률(9일 기준)을 보면 한화(48.81%) KB(25.70%) 등 국내 운용사 수익률이 피델리티(22.55%) 슈로더(18.82%) 등을 크게 앞질렀다. 아세안펀드의 장기성과(3년 누적 수익률)도 ‘삼성아세안자2’(119.59%) ‘KB아세안자’(84.56%) ‘미래에셋아세안셀렉트Q자1’(82.60%) 등이 ‘JP모간아세안자’(77.37%) ‘피델리티아세안자’(50.89%)를 앞선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 가운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곳부터 순차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도 국내 운용사 우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투자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국내 운용사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리그’를 만드는 방안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형훈 국민연금재정과장은 “국내 운용사들이 해외투자 인프라를 얼마나 제대로 구축했는지 의문”이라며 “1~2년 해외펀드 운용을 잘했다고 국민의 돈을 쉽게 맡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상미/김동윤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