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밤중 앰프도 보호받는 나라
서울 대한문 바로 옆 이얼싼중국어학원 수강생들은 지난 1년 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농성자들의 집회 행사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수업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거의 매일 오후 6시부터 두세 시간 정도 되풀이되는 행사 때 해고농성자와 시민 및 종교단체 관계자 수십 명이 스피커를 통해 노동가, 찬송가를 부르고 구호 제창 등을 하는 바람에 주변이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찼다. 이 때문에 비싼 수강료와 금쪽 같은 시간을 내 이곳을 찾는 직장인과 대학생, 주부들은 무척 짜증스러워 했다.

학원 측에선 관할 남대문경찰서에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했지만, “농성자들에게 개선명령을 내렸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학원의 한 수강생은 “저녁 친구들 모임에도 가지 않고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학원을 찾는데, 시끄러운 소음에 정말 짜증난다”며 “농성자들이 시민들의 권리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시위대 권리만 보장하나

그러나 소음피해를 농성자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법원과 경찰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들먹이며 웬만한 시위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온정적 대응자세 때문에 시위문화가 후진국형이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쌍용차노조 집회로 인해 공공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남대문경찰서의 옥외집회금지조치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친(親)시위대 판결’이 잇따른 탓에 경찰은 아무리 시끄러운 소음을 내도 제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법원에서 ‘남대문서의 옥외집회금지조치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쌍용차 해고자들이 공권력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공권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시위집회로 인한 소음피해는 곳곳에서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앞에는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확성기를 동원한 시위가 1주일에 2~3회씩 열린다. 외부세력이 함께 참여하는 삼성일반노조와 과천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의 시위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된다. 이 때문에 삼성 직원들뿐 아니라 인근 주민, 심지어는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소음피해에 시달린다. 삼성어린이집 아이들은 낮잠을 설치고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시민 행복추구권’도 있다

무분별한 집회시위가 난무해도 현행 집시법상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1년 내내 같은 장소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발생시켜도 공권력은 뒷짐만 지고 있다. 실제로 서초경찰서는 지난 3월과 4월, 네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 앞 시위대가 이용하는 스피커 소음을 측정한 결과 최대소음이 규정한계치인 85dB을 초과해 볼륨을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시위대는 볼륨을 줄이는 시늉만 했을 뿐, 계속 기준치를 넘는 소음을 내보냈다. 집시법상에는 경찰 명령에 불응해 소음을 낼 경우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법 집행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경찰 업무매뉴얼에는 소음기준 초과 때 3회 경고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방송장비 등을 잠시 보관하거나 입건할 수 있도록만 돼 있다. 결국 법원과 공권력의 온정적인 판결과 법 집행으로 인해 한국은 ‘시위천국’이 됐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시민들의 행복추구권도 인정돼야 시위문화가 개선될 수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