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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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대밭 밖에 복사꽃 두세 가지/ 따스한 봄 강물을 오리가 먼저 아네/ 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움 돋으니/ 이제야말로 하돈이 올라올 때.’ 소동파의 시에 나오는 ‘하돈(河豚·강의 돼지)’이 곧 천하진미로 꼽히는 황복이다. 옆구리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황복에 돼지 돈(豚)자를 붙인 것은 배 부풀린 모양이 뚱뚱한 돼지를 닮은 데다 그 배로 소리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복은 일반 복과 달리 회귀성 어종이다. 바다에서 2~3년 간 25~30㎝로 자란 뒤 4월 중순~6월 중순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몸통이 다른 복어보다 2~3배 크고 무게는 800~900g 안팎이다. 중국에서도 잡히지만 파주 임진강 황복을 최상품으로 친다. 힘들게 강을 거슬러 올라와 육질의 탄력이 다른 복보다 훨씬 좋다.
한때는 무분별한 어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2003년부터 치어(稚魚·어린 물고기)를 방류한 덕분에 다시 많아졌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임진강변 황복 전문집은 미식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올해는 황복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루에 몇백 마리씩 잡던 것이 눈에 띄게 줄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수온이 낮아진 데다 유해생물 등의 영향으로 어황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 25만~28만원까지 값도 치솟는 모양이다.
황복은 피를 맑게 하고 숙취해소와 간 해독에 좋아 수술 전후 환자와 당뇨, 간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식이요법으로 인기다. 글루타치온 성분은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손상을 막아준다고 알려져 있다. 회는 접시 무늬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썬다. 얼마나 얇게 써느냐를 놓고 주방장끼리 시합을 하기도 한다. 미나리와 함께 먹으면 맛과 향이 일품이다. ‘본초강목’의 서시유(西施乳)라는 표현도 복어 살이 중국 월나라 미녀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맛이 뛰어난 복일수록 독성도 강하다.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 테트로도톡신은 너무 독해서 해독제조차 없다고 한다. 한 마리의 독으로 30여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다.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송 8대가로 불리는 그가 황복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칠 정도였다니 가히 ‘치명적인 맛’의 전형이다. 소동파는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제아무리 맛있는 황복도 독을 제거하지 않고는 입에 댈 수 없다. 귀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온 국민에게 독을 내뿜는 요즈음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이든 정치든 화려하고 진귀한 맛에만 정신 팔 것이 아니라 요리하기 전에 독(毒)부터 찬찬히 제거해야 비로소 복(福)이 되거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황복은 일반 복과 달리 회귀성 어종이다. 바다에서 2~3년 간 25~30㎝로 자란 뒤 4월 중순~6월 중순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몸통이 다른 복어보다 2~3배 크고 무게는 800~900g 안팎이다. 중국에서도 잡히지만 파주 임진강 황복을 최상품으로 친다. 힘들게 강을 거슬러 올라와 육질의 탄력이 다른 복보다 훨씬 좋다.
한때는 무분별한 어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2003년부터 치어(稚魚·어린 물고기)를 방류한 덕분에 다시 많아졌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임진강변 황복 전문집은 미식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올해는 황복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루에 몇백 마리씩 잡던 것이 눈에 띄게 줄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수온이 낮아진 데다 유해생물 등의 영향으로 어황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 25만~28만원까지 값도 치솟는 모양이다.
황복은 피를 맑게 하고 숙취해소와 간 해독에 좋아 수술 전후 환자와 당뇨, 간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식이요법으로 인기다. 글루타치온 성분은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손상을 막아준다고 알려져 있다. 회는 접시 무늬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썬다. 얼마나 얇게 써느냐를 놓고 주방장끼리 시합을 하기도 한다. 미나리와 함께 먹으면 맛과 향이 일품이다. ‘본초강목’의 서시유(西施乳)라는 표현도 복어 살이 중국 월나라 미녀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맛이 뛰어난 복일수록 독성도 강하다.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 테트로도톡신은 너무 독해서 해독제조차 없다고 한다. 한 마리의 독으로 30여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다.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송 8대가로 불리는 그가 황복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칠 정도였다니 가히 ‘치명적인 맛’의 전형이다. 소동파는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제아무리 맛있는 황복도 독을 제거하지 않고는 입에 댈 수 없다. 귀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온 국민에게 독을 내뿜는 요즈음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이든 정치든 화려하고 진귀한 맛에만 정신 팔 것이 아니라 요리하기 전에 독(毒)부터 찬찬히 제거해야 비로소 복(福)이 되거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