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젠 경제협력협정 통상이다
지난 정부까지 10여년간 한국의 통상정책은 외교통상부(현 외교부)가 주도했다. 주로 시장이 큰 선진국을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로 만들어 FTA 허브로서 입지를 다지고,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2003년 한·칠레 FTA 타결을 시작으로 10년 만에 유럽연합(EU), 미국 등 47개국과 협정을 맺어, 세계경제의 약 60%(GDP 기준)에 달하는 지역과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금도 6건 16개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로써 한국은 2002년 세계무역 13위에서 2012년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8위에 진입하는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의 FTA 통상은 이처럼 무역 규모 확대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주로 대기업 위주 실적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고용의 절대다수(8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고 고용의 양과 질이 나빠지는 결과가 빚어진 측면이 있다. 통상정책이 전반적인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기보다 산업·노사·계층 간 갈등을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 정부는 통상정책의 주관부서를 산업통상자원부로 바꾸고, 새로운 통상의 틀과 전략을 수립 중이다. 신통상전략의 목표는 ‘FTA 허브 구축이나 경제영토 확장’보다는 ‘산업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단순히 무역 규모를 확대하기보다는 통상이 한국의 미래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창의적 일자리도 만들도록 지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적어도 10년 앞의 국제통상환경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기초로 선제적 대응차원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10년의 국제통상 환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글로벌 가치사슬’의 심화로 인해 외국 투자기업들의 역할이 강화되고, 최종재뿐만 아니라 중간재 및 서비스 무역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 기술, 환경 등의 규범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주요 지역통합, 특히 미국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거대 지역통합체가 등장할 것이다. 또 다른 지역에서의 경제통합도 가속화돼 세계무역과 투자는 다자간 규범뿐 아니라 복수국 간 및 양자 간 규범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셋째 이런 과정에서 통상마찰이 격화돼 국제사회는 기존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통상규범을 보완하는 새 통상규범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세계 통상조류를 헤쳐나갈 전략으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통상의 질적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심화 추세에 발맞춰 투자, 서비스, 노동력 이동 등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분야의 통상에 역점을 둬야 한다. 둘째, 통상의 지속 가능성 강화가 필요하다. 한국에 대한 상대국의 시장개방과 통상규범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당장의 관세율 인하는 물론 상대국의 산업 및 무역환경을 국제규범에 맞게 개정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무역 마찰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이 취약한 천연자원의 지속적 공급을 위한 장치 마련에도 통상이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통상의 질적수준을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FTA 협정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FTA 위주 통상이 아니라 상대국과 무역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파트너십 강화를 추구하는 경제협력협정(EPA) 통상이 필요하다. 또 신통상은 대외 협상은 물론 대내적 협상에도 만전을 기해 ‘국내 통상괴리’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드맵 작성 단계에서부터 앞으로 추구할 신통상의 방향에 대한 범부처적이며 국민적인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이현훈 <강원대 교수·국제경제학 hhlee@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