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첫 성공…치매 등 난치병 '맞춤형 치료'에 청신호
미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사람 피부세포를 이용해 인체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치매·파킨슨병 등 난치병 치료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다.

미국 오리건건강과학대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와 다치바나 마사히토 연구원 등은 16일 생명과학분야 학술지인 ‘셀(Cell)’에 이 같은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태아의 피부 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융합시켜 복제 배아를 만들었고, 여기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배아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겨난 수정란에 있는 원시세포로 분화과정을 거쳐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제작 과정에서 수백 개 이상의 난자를 사용해야 해 생명 파괴 등 윤리적 논란이 크다. 이 때문에 관련 연구도 더뎠다. 국내에서는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태 이후 난자에 대한 엄격한 윤리규정을 적용해 관련 연구가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 연구팀은 적은 수의 난자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치료제로의 발전 가능성을 높였다. 연구팀이 사용한 난자는 126개로 이 중 6개가 배아줄기세포로 만들어졌다. 성공률은 4.8%. 특히 대사성 신경질환인 라이병(leigh’s disease) 환자 2명으로부터 20개의 난자를 기증받아 각 환자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박세필 제주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복제양 돌리 연구(227번 시도해 1번 성공)에 비해 성공률이 10배 이상 높고 현재 국내 동물 복제 연구에 비해서도 낮지 않은 성공률”이라며 “무엇보다 라이병 환자 2명에 대해서는 모두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앞으로 맞춤형 치료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계는 윤리 논란이 심한 배아줄기세포 대신 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인체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주력해왔다. 박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는 암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유도만능줄기세포, 분화 기능이 제한된 성체줄기세포에 비해 면역 거부 반응 없이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게 장점”이라며 “난자를 많이 사용하는 게 문제였는데 이번에 성공률을 크게 높인 만큼 3~5년 정도면 임상단계 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환자 치료에 실제 적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복제한 배아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켜야 하지만 관련 기술이 부족해서다. 실제 미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심장세포로 분화시켰지만 정작 라이병 치료에 필요한 신경세포로는 분화시키지 못했다. 오일환 가톨릭대 생명의과학부 교수는 “핵을 치환시킨 배아줄기세포의 증식률을 높인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당장 임상에 사용하기에는 암 유발, 조직 내 안착 등 검증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검증하는 데만 1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배아줄기세포

인체 내 모든 부위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 수정 후 3일 이내 수정란, 혹은 14일 이내 배반포 상태에서 얻을 수 있다. 난자를 사용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이식 과정에서 암을 형성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배아줄기세포가 외배엽으로 분화하면 뇌·신경·피부세포로, 내배엽으로 분화하면 폐·간·이자·갑상샘 등 장기나 기관으로, 중배엽으로 분화하면 심장·근육·혈액 등으로 변한다.

○성체줄기세포

특정 환경에서 인체 내 특정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 골수·제대혈·지방조직·말초혈액 등 인체의 모든 장기나 조직에 분포한다. 자기 몸에서 비롯된 자가 성체줄기세포는 이식 과정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은 게 장점이다.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신경줄기세포, 적혈구·백혈구 등으로 분화하는 조혈모세포, 뼈·근육·연골 등으로 분화하는 간엽줄기세포 등 단계를 거쳐 각각 조직으로 변한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체세포 분화과정을 거꾸로 돌려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분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줄기세포.

체세포에 레트로바이러스(생물체와 정반대 발생 과정을 갖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어 만든다.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게 장점이지만 종양 발생 가능성이 크고 분화 효율이 떨어져 비용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