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감기약 100통, 4시간만에 '억대 필로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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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이면 1200명분 제조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제조법…고교생 정도면 손쉽게 가능
마약원료 공급지된 한국
가격 싸고 다량 구입 쉬워…범죄조직 감기약 밀수출 잇달아
'국민편의'에 내몰린 안전
'마약성분'에도 일반의약품 분류…식약처 "대책 검토중" 답변만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제조법…고교생 정도면 손쉽게 가능
마약원료 공급지된 한국
가격 싸고 다량 구입 쉬워…범죄조직 감기약 밀수출 잇달아
'국민편의'에 내몰린 안전
'마약성분'에도 일반의약품 분류…식약처 "대책 검토중" 답변만
지난 4월 경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감기약으로 마약 제조법을 익혀 필로폰을 만들어 직접 투약한 혐의로 이모씨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화학책을 구입해 읽고 인터넷을 검색해 제조 방법을 파악했다. 제조법을 익힌 이들은 실험도구를 장만하고 스마트폰에서 원소 주기율표 앱을 다운받아 실험을 거듭한 끝에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 시중 약국에서 산 종합감기약으로 필로폰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만든 필로폰은 시중에서 1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34g. 경찰 관계자는 “필로폰은 순도가 95~96% 정도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나지만 순도 97%가 넘어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환각 상태에 빠진다”며 “감기약으로 제조하는 필로폰의 순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안다”고 우려했다.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기준과 관리가 엄격해 국제 사회에서 마약청정국으로 인식돼온 대한민국의 명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감기약에서 필로폰을 추출하는 마약 범죄와 필로폰 제조를 위해 국제 마약범죄 조직이 주문한 감기약을 해외로 밀수출하려다 적발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과학반 고교생도 4시간이면 억대 필로폰 제조
국내에서 판매되는 감기약에는 필로폰의 주요 성분인 슈도에페드린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일부 종합감기약엔 전문의약품의 4배 이상 성분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감기약 구매는 너무나 쉽다.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누구나 수량제한 없이 쉽게 살 수 있다. 서울에서만 4800여개, 전국 2만개가 넘는 약국에서 연간 500억원(알약)어치의 감기약이 팔리고 있다. 반면 미국은 개인별 한 달 구매량을 9g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언제든지 마약으로 둔갑할 수 있는 감기약의 판매를 관리·단속해야 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 편의를 내세워 수년째 수수방관하고 있다. 감기약을 이용한 마약 불법제조 범죄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 회장은 “손쉬운 제조법 탓에 감기약으로 마약을 만들다 경찰에 적발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마약청정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등도 감기약에서 마약 성분을 쉽게 추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서울의 모대학 화학과 교수는 “대학교 화학과 3학년이나 고등학교 과학반 학생 정도의 화학 지식만 있으면 가능한 간단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알약 형태의 감기약은 슈도에페드린과 세티리진염산염 두 가지로 단순하게 구성된 탓이다.
지난 8일 기자는 서울 종로의 한 대형약국에서 종합감기약 100통을 구매해 직접 실험해봤다. 감기약은 전문가의 추천대로 필로폰의 주요 성분인 슈도에페드린염산염이 120㎎ 함유된 ‘XXX정’ ‘XXX즈’ 등을 골랐다. 감기약을 들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 화학과 실험실로 향했다. 대학측의 협조를 구하고 화학과 학생들과 함께 슈도에페드린염산염 추출 실험을 진행했다. 과정은 단순했다. 감기약에서 염산에페드린을 추출하고, 염산을 제거해 에페드린을 분리하는 것이다. 에페드린에 팔리디움과 수소를 반응시켜 환원반응을 일으키면 암페타민이 완성된다. 암페타민이 바로 ‘히로뽕(필로폰)’이다. 마약 제조는 불법이라 필로폰 제조까지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환원 반응을 했다면 약국에서 구입한 종합감기약이 필로폰으로 변하는 데 채 4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실험참가 학생들은 추산했다. 감기약 100통에는 암페타민 40g을 제조할 수 있는 감기약 400정이 들어 있었다. 20만원어치의 종합감기약으로 1억2000만원 상당의 필로폰을 제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12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늘어나는 감기약 밀수출…해외 마약 조직이 주문
2006년 1t 트럭 안에 슈도에페드린염산염 추출 장치를 갖춰 놓고 차안에서 만든 필로폰을 판매해 온 일당이 적발된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과거 화학과 교수 등 화학 전문지식을 갖춘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 호기심이나 필요로 몰래 만들어왔다면, 최근엔 화학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통한 독학으로 쉽게 필로폰을 만들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화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생은 “일부 대학 화학과 학생들이 클럽에서 만난 여자에게 주려고 몰래 필로폰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한 화학과 교수도 “외국에서 공부한 화학과 교수 중 일부가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복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에서 만든 ‘감기 마약’이나 감기약을 외국으로 밀수출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달 인천지방검찰청 강력부와 인천공항세관 합동수사반은 인천에서 감기약으로 필로폰 10㎏, 시가 300억원어치를 제조한 국제 마약조직을 적발했다. 이들은 다량의 감기약 구입이 까다로운 호주를 피해 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에서 필로폰을 만들어 호주로 밀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무허가 도매상에서 대량의 감기약을 사서 제분소에서 필로폰을 만든 뒤 청국장과 섞어 멕시코로 밀수출하던 임모씨(50)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주요 생산국들이 슈도에페드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제 마약 제조책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수 회장은 “국내 감기약 규제가 느슨한 탓에 한국이 세계 각지의 마약 원료 공급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며 감독당국의 허술한 마약류 관리 정책을 성토했다.
○‘국민 안전’보다 ‘국민 편의’가 우선인 식약처
국내에서 감기약 밀수출이나 감기약을 이용한 필로폰 제조가 판치는 건 감기약 구매에 대한 허술한 관리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식약처는 슈도에페드린만으로 제조된 약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 경우 에페드린 함량은 30~60㎎ 수준이다. 감기약은 일반의약품이어서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일반의약품은 5월 현재 428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코씨정(하나제약), 센티콜정(한국맥널티), 쿨노즈캡슐(종근당), 씨노스정(넥스팜코리아) 등의 감기약은 슈도에페드린 120㎎과 세티리진염산염 5㎎으로 구성돼 있다. 종합감기약엔 슈도에페드린 함량이 전문의약품보다 최대 4배 들어있다. 혼합 성분도 슈도에페드린 외 1개여서 분리가 쉬워 불법마약 제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난달 1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전문 화학지식이 없는 일반인까지 감기약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상황”이라며 “감기약 취급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국민 편의’를 내세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007년 당시 식약처(식약청)는 감기약을 이용한 마약 제조 범죄가 잇따르자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함유된 감기약 3일 용량(720㎎)을 초과 구입할 때 판매일자 및 판매량, 구입자 성명 등을 기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관련법 개정은 ‘국민 불편’을 이유로 진전이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선 감기약을 마약으로 도용한 사건이 많지 않다”며 “규제해야 할 감기약의 종류가 너무 많고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보다 규제로 인한 일반 국민의 불편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형을 마치고 치료기관에 다니고 있는 한 마약사범은 “청소년들도 쉽게 마약을 만들 수 있는데 마약 원료물질이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며 “약쟁이(마약복용자)들에겐 천국이나 다름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지훈/홍선표 기자 lizi@hankyung.com
감기약 외국서는 美, 1인 月구입량 제한…구매자 신상기록 남겨야
너그러운 국내 감기약 구매환경과 달리 미국에선 대부분의 주가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2004년 오클라호마주에서 슈도에페드린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식품점 등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약국 판매시에도 1인당 구입량 한도를 월 9g으로 제한했다. 이후 미국 대부분의 주는 오클라호마주의 결정에 따랐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슈도에페드린 함유 감기약을 사거나 팔 때 손님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약국은 개인 신상정보 및 구매내용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윤흥희 서울 동대문경찰서 마약수사팀장은 “매년 1만명 이상의 마약 사범이 검거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라 부를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에 마약류 투약자는 30만명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또 다른 경찰은 “필로폰 제조법을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 마약 제조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통제하지 못하면 마약투약자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과장은 “단속은 검찰과 경찰이, 해외 밀반입은 관세청이, 치료보호는 보건복지부가 제각각 담당하다 보니 마약 사용실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내실 있는 마약 관리 정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마약 수사가 경찰·검찰·관세청·식약처로 나눠져 있어 효율적인 수사가 힘든 측면이 있다”며 “한국의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보수집과 분석·교육·치료·수사를 총괄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처럼 단일화된 마약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기준과 관리가 엄격해 국제 사회에서 마약청정국으로 인식돼온 대한민국의 명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감기약에서 필로폰을 추출하는 마약 범죄와 필로폰 제조를 위해 국제 마약범죄 조직이 주문한 감기약을 해외로 밀수출하려다 적발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과학반 고교생도 4시간이면 억대 필로폰 제조
국내에서 판매되는 감기약에는 필로폰의 주요 성분인 슈도에페드린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일부 종합감기약엔 전문의약품의 4배 이상 성분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감기약 구매는 너무나 쉽다.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누구나 수량제한 없이 쉽게 살 수 있다. 서울에서만 4800여개, 전국 2만개가 넘는 약국에서 연간 500억원(알약)어치의 감기약이 팔리고 있다. 반면 미국은 개인별 한 달 구매량을 9g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언제든지 마약으로 둔갑할 수 있는 감기약의 판매를 관리·단속해야 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 편의를 내세워 수년째 수수방관하고 있다. 감기약을 이용한 마약 불법제조 범죄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 회장은 “손쉬운 제조법 탓에 감기약으로 마약을 만들다 경찰에 적발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마약청정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등도 감기약에서 마약 성분을 쉽게 추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서울의 모대학 화학과 교수는 “대학교 화학과 3학년이나 고등학교 과학반 학생 정도의 화학 지식만 있으면 가능한 간단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알약 형태의 감기약은 슈도에페드린과 세티리진염산염 두 가지로 단순하게 구성된 탓이다.
지난 8일 기자는 서울 종로의 한 대형약국에서 종합감기약 100통을 구매해 직접 실험해봤다. 감기약은 전문가의 추천대로 필로폰의 주요 성분인 슈도에페드린염산염이 120㎎ 함유된 ‘XXX정’ ‘XXX즈’ 등을 골랐다. 감기약을 들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 화학과 실험실로 향했다. 대학측의 협조를 구하고 화학과 학생들과 함께 슈도에페드린염산염 추출 실험을 진행했다. 과정은 단순했다. 감기약에서 염산에페드린을 추출하고, 염산을 제거해 에페드린을 분리하는 것이다. 에페드린에 팔리디움과 수소를 반응시켜 환원반응을 일으키면 암페타민이 완성된다. 암페타민이 바로 ‘히로뽕(필로폰)’이다. 마약 제조는 불법이라 필로폰 제조까지 실험을 진행하지 않았다. 환원 반응을 했다면 약국에서 구입한 종합감기약이 필로폰으로 변하는 데 채 4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실험참가 학생들은 추산했다. 감기약 100통에는 암페타민 40g을 제조할 수 있는 감기약 400정이 들어 있었다. 20만원어치의 종합감기약으로 1억2000만원 상당의 필로폰을 제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12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늘어나는 감기약 밀수출…해외 마약 조직이 주문
2006년 1t 트럭 안에 슈도에페드린염산염 추출 장치를 갖춰 놓고 차안에서 만든 필로폰을 판매해 온 일당이 적발된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과거 화학과 교수 등 화학 전문지식을 갖춘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 호기심이나 필요로 몰래 만들어왔다면, 최근엔 화학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통한 독학으로 쉽게 필로폰을 만들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화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생은 “일부 대학 화학과 학생들이 클럽에서 만난 여자에게 주려고 몰래 필로폰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한 화학과 교수도 “외국에서 공부한 화학과 교수 중 일부가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복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에서 만든 ‘감기 마약’이나 감기약을 외국으로 밀수출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달 인천지방검찰청 강력부와 인천공항세관 합동수사반은 인천에서 감기약으로 필로폰 10㎏, 시가 300억원어치를 제조한 국제 마약조직을 적발했다. 이들은 다량의 감기약 구입이 까다로운 호주를 피해 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에서 필로폰을 만들어 호주로 밀수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무허가 도매상에서 대량의 감기약을 사서 제분소에서 필로폰을 만든 뒤 청국장과 섞어 멕시코로 밀수출하던 임모씨(50)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주요 생산국들이 슈도에페드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제 마약 제조책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수 회장은 “국내 감기약 규제가 느슨한 탓에 한국이 세계 각지의 마약 원료 공급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며 감독당국의 허술한 마약류 관리 정책을 성토했다.
○‘국민 안전’보다 ‘국민 편의’가 우선인 식약처
국내에서 감기약 밀수출이나 감기약을 이용한 필로폰 제조가 판치는 건 감기약 구매에 대한 허술한 관리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식약처는 슈도에페드린만으로 제조된 약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 경우 에페드린 함량은 30~60㎎ 수준이다. 감기약은 일반의약품이어서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일반의약품은 5월 현재 428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코씨정(하나제약), 센티콜정(한국맥널티), 쿨노즈캡슐(종근당), 씨노스정(넥스팜코리아) 등의 감기약은 슈도에페드린 120㎎과 세티리진염산염 5㎎으로 구성돼 있다. 종합감기약엔 슈도에페드린 함량이 전문의약품보다 최대 4배 들어있다. 혼합 성분도 슈도에페드린 외 1개여서 분리가 쉬워 불법마약 제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난달 19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전문 화학지식이 없는 일반인까지 감기약으로 마약을 제조하는 상황”이라며 “감기약 취급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국민 편의’를 내세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007년 당시 식약처(식약청)는 감기약을 이용한 마약 제조 범죄가 잇따르자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함유된 감기약 3일 용량(720㎎)을 초과 구입할 때 판매일자 및 판매량, 구입자 성명 등을 기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관련법 개정은 ‘국민 불편’을 이유로 진전이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선 감기약을 마약으로 도용한 사건이 많지 않다”며 “규제해야 할 감기약의 종류가 너무 많고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보다 규제로 인한 일반 국민의 불편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실형을 마치고 치료기관에 다니고 있는 한 마약사범은 “청소년들도 쉽게 마약을 만들 수 있는데 마약 원료물질이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며 “약쟁이(마약복용자)들에겐 천국이나 다름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지훈/홍선표 기자 lizi@hankyung.com
감기약 외국서는 美, 1인 月구입량 제한…구매자 신상기록 남겨야
너그러운 국내 감기약 구매환경과 달리 미국에선 대부분의 주가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2004년 오클라호마주에서 슈도에페드린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식품점 등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슈도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약국 판매시에도 1인당 구입량 한도를 월 9g으로 제한했다. 이후 미국 대부분의 주는 오클라호마주의 결정에 따랐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슈도에페드린 함유 감기약을 사거나 팔 때 손님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약국은 개인 신상정보 및 구매내용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윤흥희 서울 동대문경찰서 마약수사팀장은 “매년 1만명 이상의 마약 사범이 검거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라 부를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에 마약류 투약자는 30만명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또 다른 경찰은 “필로폰 제조법을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 마약 제조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통제하지 못하면 마약투약자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과장은 “단속은 검찰과 경찰이, 해외 밀반입은 관세청이, 치료보호는 보건복지부가 제각각 담당하다 보니 마약 사용실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내실 있는 마약 관리 정책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마약 수사가 경찰·검찰·관세청·식약처로 나눠져 있어 효율적인 수사가 힘든 측면이 있다”며 “한국의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보수집과 분석·교육·치료·수사를 총괄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처럼 단일화된 마약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