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김희갑이 나오는 영화’와 ‘김희갑이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 1962년 당시 국내 영화인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얘기다. ‘합죽이’로 유명한 희극배우 김희갑 선생은 그해에만 2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선생은 1923년 함경남도 장진 개마고원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친을 잃고 17세 때 일본으로 밀항해 메이지대 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중퇴하고 귀국했다. 전기회사, 신문사 등에 취직했지만 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광복을 맞은 뒤 친구 소개로 들어간 반도가극단에서 드디어 ‘물’을 만났다. 첫 주연을 맡은 국내 최초 뮤지컬 영화 ‘청춘쌍곡선’(1956)을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 구봉서 양석천 양훈 등과 함께 출연한 ‘오부자’(1958)는 선생에게 ‘합죽이’란 별명을 안겼다.

인기가 올라가면서 예기치 못한 고초도 겪었다. 1959년 자유당 홍보를 위한 코미디언팀 결성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정치 깡패’ 임화수에게 폭행당한 이른바 ‘합죽이 상해사건’의 당사자였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와룡선생 상경기’ ‘팔도강산’ 등 7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 등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연기와 노래, 성대모사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랬던 그는 자전 회고록 ‘어느 광대의 사랑’을 출간한 이듬해인 1993년, 폐렴 합병증으로 눈을 감았다. 20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