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티 교수 "유아 교육의 質이 대학진학·소득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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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 '예비 노벨경제학상'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받은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비합리적 선택서 출발
저축률 높이기 위한 정부보조금 실패
정책에 심리만 활용해도 충분한 효과 거둬
대학보다 초등교육 질 개선하는게 더 중요"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비합리적 선택서 출발
저축률 높이기 위한 정부보조금 실패
정책에 심리만 활용해도 충분한 효과 거둬
대학보다 초등교육 질 개선하는게 더 중요"
#1. 한 초등학교 영양사는 카페테리아에서 채소와 과일이 더 잘 보이도록 진열대 배치를 바꿨다. 그러자 아이들의 식습관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배열만 바꿨을 뿐인데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하는 학생이 25%나 늘었다.
#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은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실물 크기의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 양이 80%나 줄었다. 파리 그림 소변기는 이후 전 세계 공공건물로 확산됐다.
초등학교 영양사와 스키폴 공항 관리자의 공통점은 뭘까? 미세한 조정을 통해 인간 행동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온정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지지하는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선택 설계사’라 부른다. 사람들은 정보도 부족하고 감정적이어서 자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따라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돕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들의 주장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경제학계의 새로운 기류로 주목받아온 자유주의적 온정주의가 올해는 주류 경제학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이 분야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33)가 세금, 교육 등 공공정책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으면서다. 미국경제학회가 40대 미만의 유망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노벨경제학상의 관문으로도 불린다.
▷주요 연구 주제는 무엇이며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는.
“나는 행동경제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동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개인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심리적 혹은 사회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가 경제정책 수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경제학회도 이런 점을 인정한 것 같다. 우리 연구팀이 수행한 은퇴 저축에 관한 연구가 좋은 사례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많다.”
▷은퇴 저축 연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미국 정부는 401K(미국의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 등 은퇴 후 저축 상품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1년에 1000억달러를 세제혜택 및 보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연구 결과 정부가 보조금으로 100달러를 지출하면 은퇴자들의 저축은 1달러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가입자가 거부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연금에 가입되도록 제도를 고치면 저축률이 크게 늘어났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낭비하지 않고도 국민들의 저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특정 프로그램에 미리 동의한 사람만 참여시키는 ‘옵트인(opt-in)’ 방식과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참여시키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장기 기증 시스템도 좋은 예다. 한국은 생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에 한해서만 기증할 수 있도록 하는 ‘옵트인’ 방식을 채택해 국민들의 장기기증률이 낮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등은 사전에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는 ‘옵트아웃’ 방식을 채택해 기증률이 매우 높다.)
▷근로장려세제(EITC)가 실제로 근로 의욕을 높이는지도 연구했다.
“소득에 비례한 세금공제액이 소득세액보다 많으면 그 차액을 돌려주는 EITC는 저소득 근로자 가구가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그런데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이 실제로 조사를 해봤다. 이 제도에 대해 잘 아는 가구와 모르는 가구를 나눠 조사한 결과 잘 알고 있는 가구는 공제를 더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분명히 근로 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려면 제도를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치원 교사의 역량에 대한 연구도 흥미롭다.
“우리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으로 유치원 교사의 역량을 매겼다. 그리고 역량 높은 교사가 아이들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지역별 격차와 같은 요소는 제외했다. 연구 결과 유치원에서 역량이 높은 교사에게 배운 학생들은 대학 진학률과 성인이 된 뒤의 소득 수준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정부가 초등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초등 교육의 질이 달라지고, 이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 같다.
“그렇다. 교육 수준의 격차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나의 고향인 인도가 대표적이다. 지난 20년간 고속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계층이 많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보다 초등 교육의 질을 개선해야 더 효과적이라는 게 우리 연구가 주는 교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나라가 많은가.
“아직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어디에서나 이용될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선택 설계사’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할 위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럴 위험이 다분하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경제정책 수립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전에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행동경제학자 체티 교수는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나 9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인도계 미국인이다. 행동경제학에 기반한 세금, 복지, 교육 등 공공정책이 주요 연구 분야다. 하버드대에서 3년 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23세의 나이에 UC버클리 조교수로 임용됐다. 27세에 테뉴어(종신교수 자격)를 받았다. 이후 모교인 하버드대로 자리를 옮겨 29세에 하버드대 테뉴어까지 거머쥐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체티 교수를 세계 8대 젊은 경제학자로 꼽았다. 지난해 소위 ‘천재 상(genius grant)’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3월 미국경제학회로부터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은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실물 크기의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그러자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 양이 80%나 줄었다. 파리 그림 소변기는 이후 전 세계 공공건물로 확산됐다.
초등학교 영양사와 스키폴 공항 관리자의 공통점은 뭘까? 미세한 조정을 통해 인간 행동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온정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지지하는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선택 설계사’라 부른다. 사람들은 정보도 부족하고 감정적이어서 자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따라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돕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들의 주장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경제학계의 새로운 기류로 주목받아온 자유주의적 온정주의가 올해는 주류 경제학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이 분야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33)가 세금, 교육 등 공공정책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으면서다. 미국경제학회가 40대 미만의 유망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노벨경제학상의 관문으로도 불린다.
▷주요 연구 주제는 무엇이며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는.
“나는 행동경제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동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개인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심리적 혹은 사회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가 경제정책 수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경제학회도 이런 점을 인정한 것 같다. 우리 연구팀이 수행한 은퇴 저축에 관한 연구가 좋은 사례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많다.”
▷은퇴 저축 연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미국 정부는 401K(미국의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 등 은퇴 후 저축 상품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1년에 1000억달러를 세제혜택 및 보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연구 결과 정부가 보조금으로 100달러를 지출하면 은퇴자들의 저축은 1달러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가입자가 거부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연금에 가입되도록 제도를 고치면 저축률이 크게 늘어났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낭비하지 않고도 국민들의 저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특정 프로그램에 미리 동의한 사람만 참여시키는 ‘옵트인(opt-in)’ 방식과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참여시키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장기 기증 시스템도 좋은 예다. 한국은 생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에 한해서만 기증할 수 있도록 하는 ‘옵트인’ 방식을 채택해 국민들의 장기기증률이 낮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등은 사전에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는 ‘옵트아웃’ 방식을 채택해 기증률이 매우 높다.)
▷근로장려세제(EITC)가 실제로 근로 의욕을 높이는지도 연구했다.
“소득에 비례한 세금공제액이 소득세액보다 많으면 그 차액을 돌려주는 EITC는 저소득 근로자 가구가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그런데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이 실제로 조사를 해봤다. 이 제도에 대해 잘 아는 가구와 모르는 가구를 나눠 조사한 결과 잘 알고 있는 가구는 공제를 더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분명히 근로 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려면 제도를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치원 교사의 역량에 대한 연구도 흥미롭다.
“우리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으로 유치원 교사의 역량을 매겼다. 그리고 역량 높은 교사가 아이들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지역별 격차와 같은 요소는 제외했다. 연구 결과 유치원에서 역량이 높은 교사에게 배운 학생들은 대학 진학률과 성인이 된 뒤의 소득 수준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정부가 초등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초등 교육의 질이 달라지고, 이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 같다.
“그렇다. 교육 수준의 격차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나의 고향인 인도가 대표적이다. 지난 20년간 고속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계층이 많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보다 초등 교육의 질을 개선해야 더 효과적이라는 게 우리 연구가 주는 교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나라가 많은가.
“아직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어디에서나 이용될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선택 설계사’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할 위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럴 위험이 다분하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경제정책 수립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전에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행동경제학자 체티 교수는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나 9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인도계 미국인이다. 행동경제학에 기반한 세금, 복지, 교육 등 공공정책이 주요 연구 분야다. 하버드대에서 3년 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23세의 나이에 UC버클리 조교수로 임용됐다. 27세에 테뉴어(종신교수 자격)를 받았다. 이후 모교인 하버드대로 자리를 옮겨 29세에 하버드대 테뉴어까지 거머쥐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체티 교수를 세계 8대 젊은 경제학자로 꼽았다. 지난해 소위 ‘천재 상(genius grant)’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3월 미국경제학회로부터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