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시내 A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한 남성이 옷 세 벌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여동생이 2주 전 샀는데 옷이 별로라고 한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매장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니 밑단마다 분필 자국이 남았고, 밑단 이음새엔 한번 뜯었다 봉합한 흔적도 보였다. 제품을 뜯어본 뒤 다시 엉성하게 박음질한 것이다. 환불을 거부하자 이 소비자는 “원래 옷이 그랬다”며 소란을 피우다 고객상담실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고 돌아갔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 패션매장들이 이 같은 ‘카피슈머(copysumer)’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카피슈머는 복제(copy)하는 소비자(consumer)라는 뜻으로,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을 산 뒤 짝퉁을 만들기 위한 견본으로 사용한 후 봉합해 환불받는 얌체족을 말한다. 주로 ‘짝퉁’ 제조업자로 추정된다. 백화점 관계자는 “카피슈머는 최고급 명품엔 접근하지 않고 이보다 한 단계 급이 낮은 고급 여성복을 주요 타깃으로 한다”고 전했다.

계절별 신상품이 나오는 매년 2월, 5월, 8월, 10월 어김없이 나타나는 카피슈머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5~10분 만에 여러 벌의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구입한다. 구매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백화점 카드를 쓰지도, 포인트를 쌓지도 않는다. 환불을 요구할 때는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낸다. 환불만 전문으로 대행하는 업자들인데, 매장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블랙컨슈머로 돌변하는 탓에 직원들이 진땀을 흘린다.

현대, 신세계 등 일부 백화점은 ‘디자인 무단 도용과 관련해선 환불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매장에 붙여 놓았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는 카피슈머를 원천 차단할 방법은 없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롯데는 2010년 비슷한 안내문을 매장에 붙였다가 지금은 떼어냈고, 갤러리아도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했으나 실제로 시행한 적은 없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