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新성장엔진' 동남아가 식어간다
중국과 인도가 주춤한 사이 새로운 세계 ‘성장 엔진’으로 떠올랐던 동남아시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통화가치 상승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들 국가도 조만간 금리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21일 태국은 올 1월부터 3개월간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2.2% 뒷걸음질쳤다고 발표했다. 작년 1분기 GDP 증가율이 10.8%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앞서 싱가포르도 1.4% 떨어진 1분기 성장률을 내놨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는 4.09% 성장했지만 2009년 3분기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인도네시아 역시 1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6.02%에 그쳐 3분기 연속 하락했다.

외신들은 동남아시아 경제가 부진에 빠진 이유를 선진국의 양적완화에서 찾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풀린 돈이 이들 국가로 흘러들며 통화가치 상승을 조장해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지나친 엔화 풀기가 경제 부진에도 동남아시아의 자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태국 바트화는 올 들어 달러당 30바트 수준까지 올라 16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페소화 절상으로 1분기 수출이 6% 감소했다. 지난해 214억달러로 필리핀 GDP의 10%에 달하는 해외 필리핀 근로자들의 본국 송금액 역시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져 내수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선진국에서 단기 투자자금이 유입되면서 자산 거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현지 리포트를 통해 “자카르타 중심가 부동산은 최근 수년간 연평균 30~40%씩 올랐으며 일부 중소도시는 지난해 50% 급등하기도 했다”며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동남아시아 경제가 전반적으로 과열, 거품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는 통화가치 절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태국 중앙은행은 오는 29일 통화정책위원회를 열어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산업계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키티랏 나 라농 태국 부총리 겸 재무상은 “높은 금리가 해외 자금 유입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는 필리핀 중앙은행도 예금계좌에 대한 금리를 올 들어서만 세 차례 인하하면서 외화 유입 차단에 부심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