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9억서 1년새 298억 껑충…엔유씨전자 대박 비밀은 슈퍼컴
대구의 엔유씨전자는 국내 녹즙기 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주방가전업계 선두주자다. 이른바 ‘잘나가는’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슈퍼컴퓨터가 있다. 엔유씨전자는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액기 착즙률을 높이는 기술을 확보, 원액기 매출이 2010년 19억원에서 2011년 298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지방의 중소기업이 어떻게 슈퍼컴퓨터를 쓸 수 있었을까.

박영서 KISTI  원장
박영서 KISTI 원장
슈퍼컴퓨터는 통상 세계 톱 500위 안에 드는 초고성능 컴퓨터를 뜻하는 것으로,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순위가 발표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 성능을 보면 세계 인구 7억명이 6개월에 걸쳐 계산하는 것을 단 1초에 해낼 수 있는 성능이다. 국방, 우주항공, 기상, 에너지 분야에서 활용되던 슈퍼컴퓨터는 최근 들어 활용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산업체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팅센터로 평가되는 미국 국가슈퍼컴퓨팅응용센터(NCSA)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슈퍼컴퓨팅센터(HLRS)는 각각 슈퍼컴퓨팅 자원의 30%와 90% 이상을 산업체에 할애한다. 이들이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 추진하는 것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M&S)이다.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기초기술 연구를 통한 원천기술 개발 이상으로 산업체의 제품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M&S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한 자동차 부품의 성능을 직접 테스트하는 대신 슈퍼컴퓨팅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거나, 교량의 안전을 위한 교좌장치를 일일이 금형을 떠가며 설계하는 대신 슈퍼컴퓨팅 모델링으로 대체하면 기술 및 제품 개발 효율성이 크게 높아진다. 그만큼 기업 경쟁력도 높아진다.

M&S를 통해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가 주관하는 NDEMC 컨소시엄이 대표적이다. NDEMC는 제너럴일렉트릭(GE), 보잉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에 슈퍼컴퓨팅 M&S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이들이 슈퍼컴을 활용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다시 대기업에서 흡수하는 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대기업은 고성능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중소기업은 제품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다.

재정적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슈퍼컴퓨팅 인력을 확보하거나 고가의 슈퍼컴퓨팅 프로그램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슈퍼컴퓨터가 유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두 내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는 총 4대. 기상청의 해담(77위)과 해온(78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타키온II(89위), 서울대의 천둥(278위)이다. 이들 가운데 KISTI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중소기업이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KISTI에서 운영 중인 산·학·연 네트워크 과학기술정보협의회(ASTI)의 산업체 슈퍼컴퓨팅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KISTI에서는 ASTI 소속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한 뒤 한 해 20개 내외의 중소기업을 선정한다.

이 기업들은 약 6개월간 제품설계 및 성능 평가에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 활용 방법에 대한 교육 및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출연연-중소기업 공동기술개발사업을 통해서다. 선정된 기업은 중소기업청의 지원과 함께 KISTI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KIST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슈퍼컴퓨팅 M&S를 활용할 경우 제품 개발 시간과 비용이 각각 43%, 41%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이에 따라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연구·개발이 호응을 얻으면서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도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성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냉각탑 생산 전문 기업인 경인기계는 최근 신제품을 개발해 달라는 고객의 요구를 받고 숱한 연구를 통해 일방형 백연저감냉각탑을 여러 개 설계했다. 하지만 어떤 제품의 효율성이 뛰어난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슈퍼컴퓨터였다. 이 회사는 성능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했고, 두 달 만에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소헌영 경인기계 전무는 “슈퍼컴퓨터가 없었다면 시제품을 만들어 일일이 테스트하느라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거나, 많은 돈을 들여 독일이나 벨기에 등에서 선진기술을 사와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컴퓨팅 M&S는 특히 중소기업에 유용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대기업의 상황 변화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결정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슈퍼컴퓨팅 M&S를 통해 제품 개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워진다.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생존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아직 슈퍼컴퓨팅 M&S 추진비율은 미미하다. 앞서가는 미국이 6% 수준이고, 한국은 0.3%에 불과하다. 미국은 2020년까지 이 비율을 98%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 역시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가 있는 KISTI를 중심으로 슈퍼컴퓨팅 지각변동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슈퍼컴퓨팅 M&S를 폭넓게 활용,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