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재정위기국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해외 민간 투자자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집행 과정에서 손실을 의무적으로 분담하게 될 전망이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0일 진행된 IMF 이사회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재정위기 국가에 IMF가 구제금융을 집행하면 다른 나라 정부와 투자자들이 빌려준 돈을 일부 탕감해주는 채무 재조정이 이뤄진다.

하지만 헤지펀드를 비롯한 민간 투자자는 채무 구조조정에 응해야 할 의무가 없어 이후 경제가 정상화되면 빌려준 돈을 모두 갚으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등 IMF 구제금융이 집행될 때마다 다른 채권자와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자국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미국 등 선진국의 반대로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FT는 최근 미국 헤지펀드의 소송에 따른 아르헨티나의 ‘기술적 디폴트(지급 불능)’ 위기와 그리스 구제금융 등을 겪으며 IMF가 기존 입장을 바꾸기로 했다고 전했다. 2001년 재정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는 디폴트를 선언한 뒤 92%의 채권자와 채무 재조정을 해 빚을 상당 부분 탕감받았다. 이때 채무 재조정 협상에 응하지 않은 미국 헤지펀드가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는 해당 빚을 갚을 때까지 다른 투자자에 대한 부채도 상환할 수 없는 기술적 디폴트의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이는 재정위기가 한창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로도 번질 수 있다. IMF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채권자의 3분의 2가 그리스에 대한 채무 재조정에 동의했다며 빚 전체를 일부 탕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채무 재조정에 동의하지 않은 채권자들이 소송에 나서면 그리스 역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IMF 관계자는 “채무 재조정 협약이 여러 가지 변수로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IMF가 이번에 관련 원칙을 수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