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덱스 등 역외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수십~수백개의 자회사를 숨기는 수법을 써 세금 감시를 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기업들이 실제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을 하지 않은 채 연차보고서 등에 자회사가 줄어든 것처럼 공개해 왔다고 지난 22일 보도했다. 이들 기업이 수년간 공개하지 않은 해외 자회사는 수백개에 달한다.

미국 의회에서 애플의 절세 논란이 불거진 상황인 데다 유럽연합(EU)이 국가별 기업의 이익과 세금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의견을 모음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400개 자회사 2년 새 8개로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은 2010년까지 400개 이상의 국내외 자회사 명단을 연차보고서를 통해 공개했지만 작년에는 아일랜드 내 자회사 등 8개만 공개했다.

구글도 2009년 연차보고서에는 100개 이상의 자회사 정보가 기록돼 있다. 이 중 81개가 버뮤다, 홍콩, 네덜란드 등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법인이다. 3년 뒤 공개한 연차보고서에는 아일랜드에 있는 자회사 2개만 공개했다. 구글은 2011년 법인소득세를 물지 않는 버뮤다로 100억달러의 소득을 옮겨 20억달러의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2002년 100개가 넘는 자회사 정보를 공개했지만 지난해 연차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자회사는 11개에 그쳤다. 미국 상원은 MS가 2011년 로열티 수익을 아일랜드, 싱가포르, 푸에르토리코 등으로 옮겨 약 40억달러의 세금을 회피했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물류회사와 방산업체도 마찬가지다. 물류회사 페덱스도 2008년 150개 이상의 자회사가 있다고 밝혔다가 1년 뒤 23개로 확 줄여 공개했다.

○탈세 목적 자회사 숨기기 ‘꼼수’

문제는 이 기업들이 계열사 구조조정을 하거나 자산을 매각한 흔적이 없다는 것. WSJ는 이들이 실제로 자회사를 없앤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기업들은 조세피난처로 불리는 버뮤다, 케이맨제도 등에 설립한 자회사 관련 정보일수록 더 감추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비슷한 수법으로 세금을 피한 이유는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과 세제의 허점 때문이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3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미국 내 본사에 대해 해외에서 올린 수익에도 과세하는 ‘전 세계 소득 납세제(worldwide tax)’를 택하고 있다. 현행 세제의 허점은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현금이 미국으로 들어올 때까지 과세를 유예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역외 현금을 송금하지 않으면 과세할 수 없다. 이런 세법의 허점 때문에 기업은 세율이 낮은 나라에 현금을 쌓아두려 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 현행법상 자회사 정보 누락이 불법은 아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은 ‘중요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는 자회사의 정보만 공시하도록 돼 있다. 자산 규모나 수입이 적은 자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므로 꼭 알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