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자아실현 능력…복지가 자유 보장해줘
복지제도 반대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대결
공동체 통합 주장은 시대 역행했단 비판 받아
홉하우스는 자유주의를 수정할 목적으로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등 다양한 사상을 동원, 최초로 복지국가의 윤리적 기초를 확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복지국가는 성장보다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이념인데 그는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복지국가의 도덕적 토대를 구성하기 위해 홉하우스가 주목한 건 인간, 자유, 평등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그는 인간이 추구할 최고 가치는 자아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기심을 자제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삶에 필요한 인격의 형성이다.
자유에 대한 홉하우스의 해석도 흥미롭다. 그는 정부 간섭과 같은 ‘강제’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소극적 자유 대신 자아실현 능력(자원, 기회)을 뜻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홉하우스는 개인 생존에 필요한 재원 이상의 소득 보장, 최소임금제 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개입은 자유의 증가라고 주장한다. 복지국가야말로 자아실현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확대하기에 자유의 증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자유가 증대한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홉하우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이다. 신분적 차별이 없다는 의미의 자유주의 평등(형식적 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불평등은 한 사람의 자유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권력으로 변화시키기에 평등 없는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는 불평등을 치유할 도덕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분배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입법은 기회의 평등을 위해 정당하다고 홉하우스는 목소리를 높인다. 중소기업과 재래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과 대형 백화점을 규제하는 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얘기다.
관심을 끄는 건 홉하우스의 사회관이다. 그는 사회를 공동체로 이해한다. 공동 목적을 가진 집단이다. 그 목적은 자아실현에 필요한 사회복지의 증진이고 이를 위해 구성원들은 연대감으로 결속해 협력한다. 이런 사회는 공동의 목적 대신 재산 존중, 약속 이행 등과 같은 공동의 규칙을 기초로 하는 시장사회와 전적으로 다르다. 자유사회에서 시민은 그런 규칙을 지키면서 시장을 통해 소득을 올린다. 그러나 홉하우스의 공동체에서는 구성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민은 국가를 상대로 경제적 자원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게 사회적 기본권이다. 복지제공이 자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민이라면 그런 권리를 누리는 데 필요한 물적·비물적 부담을 감당할 의무가 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홉하우스의 이 같은 논리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다. 먼저 소득 수준과 자유의 정도가 정비례한다는 주장은 부자의 노예가 가난한 농부보다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말의 유희다. 자유는 사람들 간 관계와 관련된 개념이지 경제적 여건과 관련지을 수 없다.
불평등을 없앨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부분도 개인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각 개인의 기회를 결정하는 모든 요인을 고려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류가 있다. 그리고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차별 없는 시장경제에서 야기하는 불평등은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홉하우스는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재산상속과 토지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불평등의 사회적 기능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대 사회를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로 규정한 것은 수천만, 수억명이 함께 사는 오늘날의 거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인간 이성의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복잡다기한 복지수요와 공급을 완벽하게 계획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시스템이 시장경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홉하우스 사상의 절정은 자유사회에서 벗어나 개인들을 공동체로 통합하는 게 진화라는 그의 인식이다. 이 또한 역사 진화 과정을 보면 옳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공동체 원천은 소규모 집단의 원시사회라는 게 인류학의 고증이다. 공동 목적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평등을 누리는 사회였다. 연대감, 나누어 먹기 등의 행동규범이 지배했다.
사회 진화를 통해 공동체를 극복하고 등장한 체제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장경제 등장으로 초기 공동체의 척박한 삶을 극복하고 문명화된 삶이 가능하게 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홉하우스는 공동체에서 자유주의로의 역사적 진화를 되돌리려고 했다. 따라서 그의 복지 사회주의는 원시사회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홉하우스 사상의 힘 20세기 초 영국 정치에 영향
홉하우스 복지사상의 중심에는 사회유기체론이 있다. 사회 구성원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계적으로 상호 협력하는 복지 공동체를 유기체에 비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간, 위, 심장 등 각 장기가 생명유지란 공동 목적을 위해 위계적으로 연관돼 서로 협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비유는 문제가 있다. 복지공동체는 인위적으로 계획해 만든 조직이지만 유기체는 계획적으로 만든 게 아니다. 시장경제도 유기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이 없고, 구성원들의 관계도 수평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기에 시장경제를 ‘자생적 질서’라고 부른다. 유기체라는 말은 인간사회에 적용하기 힘든 개념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홉하우스의 공동체적 복지사상이 미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홉하우스 사상의 등장으로, 가난이 개인 탓이든 우연이든 그 원인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필요에 따라서만 복지를 공급하는 게 복지국가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복지를 사회정의로 이해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홉하우스가 마르크스주의와 대결한 것도 흥미롭다. 부르주아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극복을 방해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복지제도를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홉하우스는 자아실현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역공을 펴면서 복지제도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를 인정하되 국가가 개입해 분배결과를 수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를 미화하고 평등이라는 의미로 복종을 요구하는 홉하우스의 교리는 20세기 초 영국의 사회주의 지적 운동에 불을 붙였다. 특히 페이비언 사회주의 운동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그 운동은 혁명 대신 점진적으로 영국에 사회주의를 실현할 목적으로 19세기 말에 등장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정치에 끼친 홉하우스의 이념적 영향도 매우 크다. 시장에서 공급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세기 초에 도입한 정부지원 의무교육, 실업을 야기하는 제도라고 비판받고 있는 최저임금제 도입도 그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집단주의적 강제노령연금, 질병 실업 등과 관련된 국가의 강제보험 도입도 마찬가지다.
홉하우스와 그 추종자들의 영향으로 영국 경제는 좌경화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은 사회주의 운동을 막을 비중 있는 자유주의자들을 배출하지 못했다. 더구나 민주주의 제도 확대로 의회의 의사결정은 반시장적이었다.
민주주의 제도를 확대하면 자유시장이 광범위하게 확립되리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자유사회를 쇠퇴시킨 장본인이 됐다. 홉하우스의 영향에 의한 영국 사회의 빠른 좌경화 결과, 영국 경제는 20세기 초부터 미국에 현저히 뒤처지기 시작했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