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영업뛰던 '사장 아들'…'3초 빠른' 디지털 엑스레이 승부…GE 제치고 국내 1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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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이준혁 DK메디칼시스템 사장
낙하산 꼬리표 싫어 하루 20~30곳 병원 돌아
기다림 못견디는 환자 보고 디지털 엑스레이 개발 심혈
6곳 AS센터·10% 싼 가격, 250억 매출…4년째 1위
완벽한 AS 시스템 없인 해외진출 서두르지 않아
낙하산 꼬리표 싫어 하루 20~30곳 병원 돌아
기다림 못견디는 환자 보고 디지털 엑스레이 개발 심혈
6곳 AS센터·10% 싼 가격, 250억 매출…4년째 1위
완벽한 AS 시스템 없인 해외진출 서두르지 않아
1999년 9월 오리온전기에서 브라운관 해외영업을 하던 이준혁 대리는 부친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부친 회사로 옮기라는 부탁이었다.
당시 부친 이창규 회장이 운영하는 의료용 엑스레이 제조회사 동강의료기는 설립 8년 만에 부도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 새 구심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동강의료기는 1992년 설립돼 잘나가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환율이 달러당 2000원까지 오르면서 위기에 몰렸다. 당시만 해도 의료기기 수입판매 비중이 높았던 이 회사는 고환율로 인한 수입부담과 국내 판매부진이 겹치면서 대금결제 압박에 시달렸다. 오늘 내일이라도 부도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 거래업체 관계자가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조지 엔더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데리고 온 것. 동강의료기의 고군분투 스토리가 1998년 3월24일자 기사로 세계 각국에 뿌려졌다. 동강의료기를 통해 ‘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한 거래업체들이 하나둘씩 대금결제 기간을 연기했고 공급 가격도 환율 인상 전 가격으로 낮춰줬다.
그렇게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지 2년. 이 회장은 아들인 이준혁 대리를 불러 쓰러졌던 회사를 다시 일으켜 보자며 눈물을 흘리며 함께 손을 부여잡았다.
이 대리는 부친의 부탁을 받은 지 13년 만에 동강의료기를 매출 250억원의 국내 디지털 엑스레이 시장 1위(점유율 55%) 업체로 성장시켰다. 디지털 엑스레이기기는 필름으로 찍어 왔던 일반적인 필름 엑스레이가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처럼 엑스레이 영상정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용 데이터로 의사에게 전송할 수 있는 엑스레이 장비다.
○밑바닥부터 출발한 억척이
부친의 부름을 받고 입사할 당시만 해도 그는 의료기기에 문외한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이 날뛴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영업직에 자원했다.
그는 영업사원이 되자마자 눈에 보이는 정형외과와 산부인과 병원에 무작정 들어갔다. 말끔한 양복을 입은 채 홀로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에게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다. 하루 20~30개 병원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평일에 의사가 쫓아내면 토요일에 다시 찾아갔다. 이 사장은 “당시 설움도 많이 당했지만 방사선 촬영 기사와 병원 실무자들로부터 엑스레이 기기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서 국내 병원 환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병원들이 신속성과 정확성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오전에 특히 많은 환자가 몰리는 한국의 병원 환경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엑스레이 정보를 처리해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다. 수많은 대기환자 속에서도 빨리 찍고 오류 없이 진단받을 수 있는 엑스레이 사진이어야 환자들이 만족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필름형 엑스레이가 주도하던 시장에서 디지털 엑스레이로 전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외에선 엑스레이 한 번 찍는 데 2시간이 걸려도 참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할 때 모래시계(다음 화면으로 바뀔 때 기다리라는 의미의 아이콘)만 떠도 짜증을 냅니다”.
그는 2008년 10월 연구개발을 통해 국산 디지털 엑스레이 ‘이노비전’을 내놨다. 이 제품은 출시 1 년 만에 국내 보건소와 대학병원, 국방부 등에 70대가 팔려나갔다.
○빠른 처리속도가 강점
그만큼 강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노비전의 엑스레이 현상속도는 2.5초. 가장 빠르다는 외산제품(3~6초)보다 빨랐다. 3초의 작은 차이지만 환자가 10명이면 30초, 100명이면 300초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는 “한국 환자들은 대기시간에 매우 민감하다”며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카메라 시장이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급속히 이동했듯 엑스레이 시장 역시 디지털화 바람이 불 것으로 자신했다. 실제로 2009년까지 100억원에 미치지 못했던 국내 디지털 엑스레이시장은 4년 만인 지난해 4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엑스레이 사진 인화를 위해 암실에서 현상액 같은 화학적 감광작업이 필요했지만 디지털 엑스레이는 센서로 측정해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엑스레이를 전송할 수 있어 시간적, 환경적, 인력적 불편함을 해소했다”고 강조했다. 잘못 찍더라도 그 자리에서 확인해 1~2초 후 재촬영할 수 있게 된 것.
DK메디칼시스템은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평택 등 전국 6곳에 엑스레이 AS센터를 가지고 있다. 폐쇄적인 의료계 사회였지만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DK는 문제가 생겨도 즉시 서비스센터에서 해결해 주고 부품도 바로 공급해줘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수입 제품은 고장이 나더라도 부품을 해외에서 가져와야 해 시간적 손실이 컸다. 여기에 외산보다 10~15%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품질, 서비스, 가격 경쟁력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이노비전의 국내 재구매율은 지난해 80%를 넘어섰다.
○현지 사후관리에 집중
이 사장은 입사 10년 만인 2010년 4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의 올해 목표는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이다. 이를 위해 동강의료기는 지난 3월 ‘DK메디칼시스템’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실적은 아직 미약하다. 지난해 수출액은 20억원으로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장은 서비스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기본방침을 정했다. 현재 중동과 동남아시아 일부 진출 목표 지역을 중심으로 1~2년 동안 현지인을 대리점 직원으로 뽑아 교육시키고 있다. 그는 “관리 없이 무작정 진출해 물건만 팔고 떠나는 의료기업체들 때문에 후진국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깨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장처리 우선 ‘즉실천’ 강조…매년 생산직 혁신 연수
경기 평택에 있는 DK메디칼시스템 4층 공장엔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장비만 실어나를 수 있다. 직원들은 매일 4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불만은 없다고 한다.
공장 내부엔 ‘마음가짐을 바꾼다,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란 행동 강령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한 생산직원은 “엘리베이터는 제품을 안전하고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약간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회사가 잘되면 직원이나 회사에 모두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준혁 사장은 취임 후 꾸준히 ‘즉실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에서 문제점이 보이면 보고 없이 개선하고 이후 보고토록 하는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 제도다. 이 사장은 “왜 20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나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버려야 하느냐”며 “이들이 판단해 고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현장 개선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우수 혁신기업에 생산직 직원들까지 모두 1년에 한 차례씩 연수를 보냈다.
평택공장은 판금부터 도장, 조립, 검사, 설치 등 제품 생산의 모든 과정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이 같은 현장 개선운동으로 불량률이 현재 1%에도 미치지 않고, 생산성은 매년 두 배 이상 좋아지고 있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당시 부친 이창규 회장이 운영하는 의료용 엑스레이 제조회사 동강의료기는 설립 8년 만에 부도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 새 구심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동강의료기는 1992년 설립돼 잘나가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환율이 달러당 2000원까지 오르면서 위기에 몰렸다. 당시만 해도 의료기기 수입판매 비중이 높았던 이 회사는 고환율로 인한 수입부담과 국내 판매부진이 겹치면서 대금결제 압박에 시달렸다. 오늘 내일이라도 부도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 거래업체 관계자가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조지 엔더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데리고 온 것. 동강의료기의 고군분투 스토리가 1998년 3월24일자 기사로 세계 각국에 뿌려졌다. 동강의료기를 통해 ‘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한 거래업체들이 하나둘씩 대금결제 기간을 연기했고 공급 가격도 환율 인상 전 가격으로 낮춰줬다.
그렇게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지 2년. 이 회장은 아들인 이준혁 대리를 불러 쓰러졌던 회사를 다시 일으켜 보자며 눈물을 흘리며 함께 손을 부여잡았다.
이 대리는 부친의 부탁을 받은 지 13년 만에 동강의료기를 매출 250억원의 국내 디지털 엑스레이 시장 1위(점유율 55%) 업체로 성장시켰다. 디지털 엑스레이기기는 필름으로 찍어 왔던 일반적인 필름 엑스레이가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처럼 엑스레이 영상정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용 데이터로 의사에게 전송할 수 있는 엑스레이 장비다.
○밑바닥부터 출발한 억척이
부친의 부름을 받고 입사할 당시만 해도 그는 의료기기에 문외한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이 날뛴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영업직에 자원했다.
그는 영업사원이 되자마자 눈에 보이는 정형외과와 산부인과 병원에 무작정 들어갔다. 말끔한 양복을 입은 채 홀로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에게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다. 하루 20~30개 병원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평일에 의사가 쫓아내면 토요일에 다시 찾아갔다. 이 사장은 “당시 설움도 많이 당했지만 방사선 촬영 기사와 병원 실무자들로부터 엑스레이 기기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서 국내 병원 환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병원들이 신속성과 정확성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오전에 특히 많은 환자가 몰리는 한국의 병원 환경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엑스레이 정보를 처리해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다. 수많은 대기환자 속에서도 빨리 찍고 오류 없이 진단받을 수 있는 엑스레이 사진이어야 환자들이 만족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필름형 엑스레이가 주도하던 시장에서 디지털 엑스레이로 전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외에선 엑스레이 한 번 찍는 데 2시간이 걸려도 참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할 때 모래시계(다음 화면으로 바뀔 때 기다리라는 의미의 아이콘)만 떠도 짜증을 냅니다”.
그는 2008년 10월 연구개발을 통해 국산 디지털 엑스레이 ‘이노비전’을 내놨다. 이 제품은 출시 1 년 만에 국내 보건소와 대학병원, 국방부 등에 70대가 팔려나갔다.
○빠른 처리속도가 강점
그만큼 강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노비전의 엑스레이 현상속도는 2.5초. 가장 빠르다는 외산제품(3~6초)보다 빨랐다. 3초의 작은 차이지만 환자가 10명이면 30초, 100명이면 300초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는 “한국 환자들은 대기시간에 매우 민감하다”며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카메라 시장이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급속히 이동했듯 엑스레이 시장 역시 디지털화 바람이 불 것으로 자신했다. 실제로 2009년까지 100억원에 미치지 못했던 국내 디지털 엑스레이시장은 4년 만인 지난해 4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엑스레이 사진 인화를 위해 암실에서 현상액 같은 화학적 감광작업이 필요했지만 디지털 엑스레이는 센서로 측정해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엑스레이를 전송할 수 있어 시간적, 환경적, 인력적 불편함을 해소했다”고 강조했다. 잘못 찍더라도 그 자리에서 확인해 1~2초 후 재촬영할 수 있게 된 것.
DK메디칼시스템은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평택 등 전국 6곳에 엑스레이 AS센터를 가지고 있다. 폐쇄적인 의료계 사회였지만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DK는 문제가 생겨도 즉시 서비스센터에서 해결해 주고 부품도 바로 공급해줘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수입 제품은 고장이 나더라도 부품을 해외에서 가져와야 해 시간적 손실이 컸다. 여기에 외산보다 10~15%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품질, 서비스, 가격 경쟁력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이노비전의 국내 재구매율은 지난해 80%를 넘어섰다.
○현지 사후관리에 집중
이 사장은 입사 10년 만인 2010년 4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의 올해 목표는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이다. 이를 위해 동강의료기는 지난 3월 ‘DK메디칼시스템’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실적은 아직 미약하다. 지난해 수출액은 20억원으로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장은 서비스가 기본이 되지 않으면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기본방침을 정했다. 현재 중동과 동남아시아 일부 진출 목표 지역을 중심으로 1~2년 동안 현지인을 대리점 직원으로 뽑아 교육시키고 있다. 그는 “관리 없이 무작정 진출해 물건만 팔고 떠나는 의료기업체들 때문에 후진국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깨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장처리 우선 ‘즉실천’ 강조…매년 생산직 혁신 연수
경기 평택에 있는 DK메디칼시스템 4층 공장엔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장비만 실어나를 수 있다. 직원들은 매일 4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불만은 없다고 한다.
공장 내부엔 ‘마음가짐을 바꾼다,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란 행동 강령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한 생산직원은 “엘리베이터는 제품을 안전하고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약간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회사가 잘되면 직원이나 회사에 모두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준혁 사장은 취임 후 꾸준히 ‘즉실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에서 문제점이 보이면 보고 없이 개선하고 이후 보고토록 하는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 제도다. 이 사장은 “왜 20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나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버려야 하느냐”며 “이들이 판단해 고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현장 개선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우수 혁신기업에 생산직 직원들까지 모두 1년에 한 차례씩 연수를 보냈다.
평택공장은 판금부터 도장, 조립, 검사, 설치 등 제품 생산의 모든 과정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이 같은 현장 개선운동으로 불량률이 현재 1%에도 미치지 않고, 생산성은 매년 두 배 이상 좋아지고 있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