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산업계에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자칫 산업의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천 남동산업단지 내 한 도금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뿌리산업계에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자칫 산업의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천 남동산업단지 내 한 도금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인천 경서동 경인주물단지 내 업체 사장들의 단체 회식이 있을 때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데 환갑이 넘은 기업인이 커피 심부름을 다녀온다. 대부분 70·80대로 60대가 막내뻘이기 때문이다.

기업인 단체인 경인주물조합이 단지 내 기업인들의 연령을 조사한 결과 대상업체 29개 가운데 70세를 넘긴 창업자가 전체의 69%(20개사)였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신원주공의 강성환 사장(83)과 밸브 등을 만드는 화영특수금속의 문순상 사장(82)은 80대다. 엘리베이터부품을 제작하는 한국특수주물의 신석철 사장(78)과 펌프케이싱업체인 삼성주공의 김기태 사장(76), 모터케이스업체인 삼양주물의 송승영 사장(76), 주철연속주조품 업체인 태경연주의 한기석 사장(73), 자동차용 몰드베이스업체인 현덕특수금속의 김경한 사장(73) 등은 70대다. 이전에 경인주물조합 이사장을 지냈던 류옥섭 대광주공 사장(68)은 젊은 축에 든다.

단지 내 경영인의 고령화가 심각한 것은 마땅한 후계자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9개 기업 중 13개 기업만 경영수업을 받는 2세가 있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후계구도를 짜지 못하고 창업자들이 일선에서 뛰고 있다.

이런 사정은 인근 남동산업단지 내 도금업체들도 마찬가지다. 35개 업체가 모여 있는 일진도금단지 내 경성금속의 김용진 회장은 79세이고, 우정금속의 장세기 대표는 69세다. 대부분의 경영자가 60·70대다. 신규식 대한지엠피 사장(62)은 젊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30년 이상 도금업을 해왔고, 10대 때부터 업계에 몸담아 온 김 회장은 경력이 60년을 넘는다.

신 사장은 “일진도금단지 내 기업 중 체계적으로 2세 경영을 준비하는 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고령 창업자가 은퇴하면 상당수 도금업체의 대가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비전이 없고 환경이 열악해 2세가 부친이 창업한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 데다 창업자 역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 자식들을 데려다 놓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물 및 도금업계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뿌리산업의 후계대책을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정성모 경인주물조합 전무는 “뿌리산업은 자동차 조선 기계 등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인데 근로자는 물론 경영자들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창업자들이 순조롭게 2세 경영체제를 갖출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교육과 경영지원 등 체계적인 경영승계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1년 뿌리산업진흥특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최근엔 ‘2013년 뿌리산업 진흥 실행계획’을 수립해 시행에 들어갔다. 계획에는 뿌리산업 육성과 첨단화를 위한 △공정혁신 △인력 선순환 △연구개발 지원 △경영·근무환경 개선 △지원시스템 구축 지원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뿌리기업 수에 비해 예산이 너무 부족하고 연차적으로 지원책이 마련될 예정이어서 현장에서 이를 피부로 느끼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며 “좀 더 과감한 예산 편성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 뿌리산업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소성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 등 6개 분야에서 소재를 이용해 부품을 만들거나, 부품으로 완제품을 만드는 기초 공정산업을 의미한다.

자동차 전기전자 휴대폰 디스플레이 기계 철강 조선 산업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뿌리산업’이라 일컫는다. 전국에 2만5000여개 업체가 뿌리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