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tax haven)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역상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도시국가 주변의 섬들을 물품 창고로 이용한 것이 시초다.

당시 아테네 등의 도시국가들은 외국산 물품 거래에 약 2%의 세금을 매겼다. 때문에 상인들은 상품을 도시국가로 바로 보내지 않고 일단 주변의 섬으로 빼돌렸다가 들여가는 방식을 애용했다.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아도 됐을 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당국의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오늘날 조세피난처 상당수가 섬이라는 점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 따른 것이다.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중간에 위치한 ‘맨섬(Isle of Man)’은 노르만족이 영국을 정복하던 11세기부터 조세피난처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카리브해 동쪽에 위치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콜럼버스가 항해길에 발견하면서 15세기부터 조세피난처로 활용돼 왔다.

20세기 들어선 스위스가 떠올랐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 각국은 막대한 전비 처리를 위해 급격히 세율을 올린 데 반해 중립을 선언했던 스위스는 세금을 늘리지 않았다. 다른 나라 기업과 부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뒤로 많은 도시국가와 섬들이 조세피난처 설립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싱가포르,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협소한 국토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 자금의 유입을 필요로 했던 나라들이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모든 세금이 면제되는 조세천국(tax paradise), 외국 법인에 대해 조세 혜택을 주는 좁은 의미의 조세피난처(tax shelter), 특정 법인에 대해 우대해주는 조세휴양지(tax resort)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케이맨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이 대표적인 조세천국이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 조세피난처

법인세 소득세에 대해 원천징수를 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장소.

외국환관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 익명성이 보장돼 탈세와 자금세탁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버뮤다제도, 홍콩, 스위스, 쿡아일랜드 등 50여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