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곤 감독이 27일 제66회 칸영화제에서 ‘세이프’로 단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병곤 감독이 27일 제66회 칸영화제에서 ‘세이프’로 단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칸에서 수상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얼떨떨하고 기쁘다는 말밖에는 생각이 안 나요. 개·폐막식 참석을 위해 턱시도를 샀는데 보람이 있습니다.”

27일 제6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13분 분량인 ‘세이프’로 단편(30분 이내) 경쟁부문 최고상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30)은 감격에 벅찬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단편 부문은 본상 시상의 한 부문으로, 최고상 이름이 장편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같을 정도로 영화제에서 비중있게 취급된다. 이번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는 한국 영화들이 아쉽게 출품되지 않았다.

문 감독은 2년 전 중앙대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만든 ‘불멸의 사나이’로 칸영화제 단편영화 비평가주간에 처음 초청됐다. 이번에 두 번째 도전 만에 영예의 수상자가 됐다. 올해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출품된 9편의 작품은 수준이 높아 예년보다 치열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단편부문에서 황금종려상 이외에 심사위원들의 특별언급상이 있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작품들이 대체로 다 좋았다는 거지요. 그래서 수상에 대한 욕심을 일찌감치 버렸어요.”

그는 지금까지 만든 단편 3편 중 2편이 칸에 초청됐고 이번에 최고상까지 받았다. 수상 비결에 대해 그는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영화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세이프’는 단편 경쟁 부문에 오른 9편 중 가장 사회성이 짙은 작품으로 평가됐다. 다른 경쟁작들이 인간관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치중한 반면 ‘세이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구 없이 궁지에 몰리는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이 영화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대생이 가불금을 갚기 위해 사람들이 환전을 요구하는 돈의 일부를 몰래 빼돌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대생은 이 좁은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거대 금융 자본이 사람들이 맡기는 돈을 굴려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려 하다가 결국 파산하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 문 감독은 신영균문화재단 후원 공모에서 발탁돼 500만원을 지원받고 자비 300만원을 들여 제작비 총 800만원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폐막식 뒤 만찬에서는 단편 심사위원장인 제인 캠피온 감독으로부터 칭찬도 들었다고 했다. “‘영화가 재미있다. 미술이 아름답고 이야기에 긴장감이 있다’고 칭찬해주면서 ‘다음 작품도 잘 만들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얘기하다 보니 좋아하는 영화와 소설의 취향이 서로 비슷하더라고요. 그런 것도 수상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어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