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장보고가 살아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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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부산항을 출발한 지 17시간쯤 됐을까. 일본 고베항의 포트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고베는 수심이 깊고 입지가 좋아 1868년 개항 때부터 일본이 전략적으로 키운 국제항이다. 한때는 세계 5위 컨테이너항의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좀 퇴색했다.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물동량을 부산항에 대거 뺏겼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부산은 세계 3대 컨테이너항으로 급부상했고 지난해까지 세계 5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산항이 올 들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닝보·저우산, 칭다오항에 밀려 7위로 내려앉았다. 일본이 고베항과 오사카항을 묶어 한신항으로 집중육성하며 고토회복을 외치고 있어 7위 수성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해운업계 배 한 척도 발주 못해
국내 최대 허브항이 이런 정도니 해운업 전체가 좋을 리 없다. 해운사들이 불황과 자금난 때문에 지난해 이후 새 선박 주문을 한 척도 못했다고 한다. 업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싼 지금이 선박을 확보할 기회인데도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99개사의 공시자료를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이 줄어든 곳이 55개나 되고 평균 감소폭은 146%에 이른다. 금융부담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지만 똑 부러지는 지원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이참에 자국 해운사의 힘을 더 키우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본은 해운사들에 연 1%의 저리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했다. 영국은 해양산업리더십위원회를 만들어 해운사와 항만 등을 육성하고 중국은 26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절반을 이미 풀었다. 덴마크도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자국의 머스크에 62억달러를 지급보증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각국이 이렇게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운업은 해상운송과 항만, 조선, 선박금융 등 직접 관련산업뿐만 아니라 심해유전 등 해양자원 개발까지 갈수록 영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직간접 고용 효과도 크다.
日은 ‘바다의 날’ 국경일 지정
모레(31일)는 바다의 날이다. 해상왕 장보고(張保皐)의 청해진 개설 날짜에 맞춰 1996년 정부가 지정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1년 먼저 정했는데 아예 국경일로 삼았다. 오는 31일 충남 태안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 3000여명이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다. 바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도 전달할 모양이다.
그러나 말만 무성하면 무엇하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가격 후려치면 죽인다’며 해운사들에 으름장부터 놓는 게 현실이다. 해양강국들이 자국 기업을 앞세워 패권 전쟁을 벌이는 현실은 눈에 안 보이는 걸까. 하긴 피 말리는 글로벌 전쟁터에서 한 건이라도 더 수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국가 미래전략도 그렇다. 좁은 땅에서 찧고 볶는 것보다 드넓은 대양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확실한 정책의 나침반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반도국가의 축소성이 아니라 해양국가, 태평양국가의 확대지향성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
일본 근대화의 기수 사카모토 료마는 정치보다 항해술을 먼저 배우며 해운과 통상원리를 깨쳤다. 그가 고베에 해운회사를 설립한 것은 26세 때인 1863년이었다. 그보다 1000년이나 앞서 해상왕국을 세웠던 장보고가 지금 우리 모습을 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이 덕분에 부산은 세계 3대 컨테이너항으로 급부상했고 지난해까지 세계 5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산항이 올 들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닝보·저우산, 칭다오항에 밀려 7위로 내려앉았다. 일본이 고베항과 오사카항을 묶어 한신항으로 집중육성하며 고토회복을 외치고 있어 7위 수성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해운업계 배 한 척도 발주 못해
국내 최대 허브항이 이런 정도니 해운업 전체가 좋을 리 없다. 해운사들이 불황과 자금난 때문에 지난해 이후 새 선박 주문을 한 척도 못했다고 한다. 업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싼 지금이 선박을 확보할 기회인데도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99개사의 공시자료를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이 줄어든 곳이 55개나 되고 평균 감소폭은 146%에 이른다. 금융부담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지만 똑 부러지는 지원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이참에 자국 해운사의 힘을 더 키우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일본은 해운사들에 연 1%의 저리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했다. 영국은 해양산업리더십위원회를 만들어 해운사와 항만 등을 육성하고 중국은 26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해 절반을 이미 풀었다. 덴마크도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자국의 머스크에 62억달러를 지급보증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각국이 이렇게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운업은 해상운송과 항만, 조선, 선박금융 등 직접 관련산업뿐만 아니라 심해유전 등 해양자원 개발까지 갈수록 영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직간접 고용 효과도 크다.
日은 ‘바다의 날’ 국경일 지정
모레(31일)는 바다의 날이다. 해상왕 장보고(張保皐)의 청해진 개설 날짜에 맞춰 1996년 정부가 지정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1년 먼저 정했는데 아예 국경일로 삼았다. 오는 31일 충남 태안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등 3000여명이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다. 바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도 전달할 모양이다.
그러나 말만 무성하면 무엇하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가격 후려치면 죽인다’며 해운사들에 으름장부터 놓는 게 현실이다. 해양강국들이 자국 기업을 앞세워 패권 전쟁을 벌이는 현실은 눈에 안 보이는 걸까. 하긴 피 말리는 글로벌 전쟁터에서 한 건이라도 더 수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국가 미래전략도 그렇다. 좁은 땅에서 찧고 볶는 것보다 드넓은 대양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확실한 정책의 나침반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반도국가의 축소성이 아니라 해양국가, 태평양국가의 확대지향성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
일본 근대화의 기수 사카모토 료마는 정치보다 항해술을 먼저 배우며 해운과 통상원리를 깨쳤다. 그가 고베에 해운회사를 설립한 것은 26세 때인 1863년이었다. 그보다 1000년이나 앞서 해상왕국을 세웠던 장보고가 지금 우리 모습을 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