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꽃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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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하 25도의 장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일곱 살 북한 소년. 영양결핍으로 네 살짜리 몸집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는 동상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빡빡머리 가운데의 동전 만한 흉터 두 개는 구걸하다 맞은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수많은 시청자를 울렸던 ‘꽃제비 소년’ 진혁이가 한국 품에 안긴 지 석 달 만에 키가 10㎝나 자랐다고 한다.
몇 년 전 여름 산에서 토끼풀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던 ‘꽃제비 처녀’는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옥수수 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꽃제비는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니는 북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두만강 인근과 옌볜 일대에서 구걸하는 탈북 어린이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몇년 전부터는 ‘노제비(나이든 거지)’ ‘청제비(젊은 거지)’까지 등장했다. 탈북자 증언집 《최근 북한 실상》에 따르면 꽃제비의 유형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장마당에서 음식을 강탈해 먹는 ‘덮치기 꽃제비’,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져 먹는 ‘쓰레기 꽃제비’, 재주를 피우며 구걸하는 ‘완구당 꽃제비’, 몸을 파는 ‘매춘 꽃제비’….
어원은 정확하지 않다. 제비가 따뜻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것에 빗댔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부터 거지를 의미하는 중국어 ‘화자(花子)’의 꽃과 낚아챈다는 뜻의 ‘잡이·잽이’를 합친 것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유랑·유목·떠돌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꼬체비예(кочевье)’에서 왔다는 해석이다. 북한 장편소설 《열병광장》(2001)에도 꽃제비 설명이 나오는데 러시아 어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장바닥을 헤매는 꽃제비들이 광복 시기부터 있었고 점차 러시아어와 혼용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꽃제비들은 1990년대에 부쩍 늘어났고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견디다 못해 탈북을 감행하지만 그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최후의 결행이다. 얼마 전 러시아군에 체포돼 북송되던 식량난민들이 하얗게 질린 채 “돌아가면 우리들은 전부 죽습네다”라고 절규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제도 라오스 국경을 넘던 꽃제비 출신 탈북 고아 9명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5세 미만 북한 어린이의 27.9%인 47만여명이 발육부진 상태다. 11세 남아의 경우 남한은 평균 키 144㎝에 몸무게 39㎏, 북한은 125㎝에 23㎏이다. 도대체 누가 이 참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흙범벅이 된 국수가락을 주워먹던 아이와 식량을 구하러 혹한의 두만강을 속옷바람으로 건너던 처녀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됐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몇 년 전 여름 산에서 토끼풀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던 ‘꽃제비 처녀’는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옥수수 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꽃제비는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니는 북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은어다. 두만강 인근과 옌볜 일대에서 구걸하는 탈북 어린이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몇년 전부터는 ‘노제비(나이든 거지)’ ‘청제비(젊은 거지)’까지 등장했다. 탈북자 증언집 《최근 북한 실상》에 따르면 꽃제비의 유형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장마당에서 음식을 강탈해 먹는 ‘덮치기 꽃제비’,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져 먹는 ‘쓰레기 꽃제비’, 재주를 피우며 구걸하는 ‘완구당 꽃제비’, 몸을 파는 ‘매춘 꽃제비’….
어원은 정확하지 않다. 제비가 따뜻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것에 빗댔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부터 거지를 의미하는 중국어 ‘화자(花子)’의 꽃과 낚아챈다는 뜻의 ‘잡이·잽이’를 합친 것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유랑·유목·떠돌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꼬체비예(кочевье)’에서 왔다는 해석이다. 북한 장편소설 《열병광장》(2001)에도 꽃제비 설명이 나오는데 러시아 어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장바닥을 헤매는 꽃제비들이 광복 시기부터 있었고 점차 러시아어와 혼용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꽃제비들은 1990년대에 부쩍 늘어났고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견디다 못해 탈북을 감행하지만 그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최후의 결행이다. 얼마 전 러시아군에 체포돼 북송되던 식량난민들이 하얗게 질린 채 “돌아가면 우리들은 전부 죽습네다”라고 절규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제도 라오스 국경을 넘던 꽃제비 출신 탈북 고아 9명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5세 미만 북한 어린이의 27.9%인 47만여명이 발육부진 상태다. 11세 남아의 경우 남한은 평균 키 144㎝에 몸무게 39㎏, 북한은 125㎝에 23㎏이다. 도대체 누가 이 참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흙범벅이 된 국수가락을 주워먹던 아이와 식량을 구하러 혹한의 두만강을 속옷바람으로 건너던 처녀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됐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