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철 셰르파(왼쪽) 등 블랙야크 '40명산'의 산행 도우미로 나선 셰르파들이 지난 16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원천마을에서 지리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고 있다. /블랙야크 제공
강인철 셰르파(왼쪽) 등 블랙야크 '40명산'의 산행 도우미로 나선 셰르파들이 지난 16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원천마을에서 지리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고 있다. /블랙야크 제공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기 마련이다. 등산복과 배낭, 등산화와 스틱 등의 장비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어느 산의 어떤 코스를 언제 가야할지 등 아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셰르파(Sherpa)다. 티베트어로 ‘동쪽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셰르파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 안내인 역할을 하는 동부 티베트 캄(Kham) 지방의 고산족 이름이다.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한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정상에 오른 텐징 노르가이라는 사람이 셰르파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등반 도우미를 셰르파라 부르고 있다.

블랙야크가 40주년을 맞아 전국의 40개 산을 오르기로 한 ‘40명산’ 행사에도 셰르파들이 참여한다. 단순한 산행 가이드가 아니라 등정 코스를 선정하는 일부터 정상을 오르는 적절한 시간을 조언해주며 중간중간 참가자들에게 산행 요령을 알려주는 일을 한다. 이 때문에 블랙야크는 두 달에 걸쳐 심사, 40명산에 동행할 50여명의 셰르파를 선발했다. 그 중 강인철 셰르파는 철쭉이 한창인 전라북도 남원의 지리산 바래봉으로 40명의 도전단과 함께 산행에 나섰다. 다음은 강인철 셰르파의 등반기다.

매년 4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지리산 바래봉 철쭉제에는 무려 50만명이 방문한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남원시 운봉면 용산리의 행사장 인근을 기점 또는 종점으로 산행을 한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교통체증, 사람체증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남원시 산내면 원천마을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카풀차량에 속속 모여든 등산애호가 40명은 4시간여를 달려 원천마을에 도착했다. 지리산 뱀사골 입구에 있는 이 마을에서 주민들이 옛길을 따라 만든 ‘지리산 신선둘레길’을 따라 팔랑마을과 팔랑치를 거쳐 바래봉까지 오르기로 했다.

하차 후 가볍게 몸을 풀었다. 표지판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면 산촌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지리산 신선둘레길은 그늘과 양지가 7 대 3 비율로 구성된 ‘힐링워킹’ 코스다. 산허리의 양지마다 펼쳐진 고사리 재배지, 소나무가 그림처럼 드리워진 정자, 돌절구로 받아내는 시원한 약수, 소나무 그늘을 뚫고 하늘로 오르는 고개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바래봉을 향해 올라갈수록 장쾌한 지리산의 주능선이 점점 눈에 들어오게 된다.

[Leisure&] 신선둘레길따라 지리산 바래봉 오르니 붉은 철쭉평원은 '황홀지경'
산행을 시작한 지 10여분이 흘러 잠시 일행들을 세우고 한숨을 돌리며 체온조절의 요령을 알려줬다. 얇은 옷 여러 겹을 입어 공기층을 만들고 수시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등산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고 발 아래의 푹신푹신한 등산로를 밟다보면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얇고 날카로운 5월의 햇살이 파고들고 새로 돋은 신록이 눈에 가득 차온다.

산길의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구비를 돌고 오르내리며 풍경을 바꾼다는 점이다. 철쭉꽃을 화단처럼 심어놓은 무덤어귀를 지나자 눈 앞에 팔랑마을이 펼쳐진다. 맑고 시원한 물을 넉넉히 보충할 수 있는 팔랑마을에서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는 초가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부터는 지리산 국립공원 관할구역으로 3년 전부터 철쭉제 기간 한 달 동안만 한시적으로 개방되는 탐방로다. 그만큼 울창한 숲과 자연이 살아있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을 오르기를 40여분이면 갑자기 눈 앞에 붉은 색 융단이 펼쳐진다. 바래봉의 철쭉꽃밭이다.

철쭉나무 아래를 돌아 탐방로로 올라서면 온 사방에 펼쳐진 철쭉평원은 황홀지경이다. 바래봉 바로 아래에는 오래 전 이곳에 양떼를 방목했던 시절에 만들어 놓은 샘터가 있다. 시원한 물이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탓에 한겨울에도 비박꾼들이 톡톡히 신세를 지는 곳이다. 잠시 풀밭에 앉아 멀리 지리 능선을 바라보며, 또는 너른 들을 내려다 보며 자연을 느낀다.

바래봉을 넘어 북쪽 능선을 따르자 또다시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경남 산청 어천마을에서 천왕봉을 거쳐 지리 주능선을 따라 성삼재를 건너 바래봉을 지나 구인월마을로 이어지는 총 거리 92㎞의 지리산 태극종주길이다. 평소에는 출입이 제한되지만 철쭉제 기간에는 개방되는 코스다. 좁은 산길을 따르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로를 잡았다.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1시간가량의 계곡길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짙은 솔향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길을 걸으며 가끔씩 도전단들과 함께 아름드리 나무를 껴안고 볼을 대본다.

등산객들이 쉬던 자리에는 주변에 흔적이 남는다. 산은 ‘아니 온 듯’ 다녀가야 하는 곳인데 각종 과자 포장지, 산악회 표지 리본, 생수병 등이 보인다. 셰르파는 휴지, 종이, 과일껍질, 음식찌꺼기 등 흔히 버려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오물들이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설명한다. ‘40명산 행사’에선 환경보호 이벤트로 산행 시에 오물을 수거해 사진을 올리면 제품 구입시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산행 종점에 이르면 서로에게 격려를 잊지 않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코스가 정말 좋았습니다”, “오늘 발걸음이 가벼우시던데요” 등 훈훈한 대화들이 오간다. 셰르파는 산행을 마친 후에도 땀에 젖은 배낭을 잠시 햇빛에 건조시키고 신발과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등 장시간 이동하는 버스 내부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알려준다. 참여자 전원이 무사히 하산했음을 확인한 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루의 산행을 짧게 되돌아본다. 출발점부터 눈을 호사시켰던 풍경들, 그리고 지명과 지형의 역사적 배경까지 되돌아본 하루의 산행은 단순한 유희시간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