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공룡 기강잡은 'IT 알파우먼'…잇따라 SNS 벤처 '통 큰 쇼핑'…모바일로 부활 날개 편다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미국 정보기술(IT)업계의 트렌드와 어긋나는 결정을 하나 내렸다. 재택근무를 금지한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에서는 재택근무가 직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좋은 방편으로 알려져 있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메이어의 결정을 두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메이어는 1만5000여명의 야후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이 같은 결정을 밀어붙였다. ‘야후병(病)’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구글에 뒤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밀려 방문자가 급감한 야후는 지난 5년간 5명의 CEO를 갈아치웠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많은 직원들은 재택근무 제도를 이용해 최소한의 일만 하거나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회사 주차장과 사무실이 텅텅 비는 사이에 야후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이 같은 야후 구원의 임무를 띠고 CEO로 부임한 사람이 메이어다.

메이어는 직원들의 불만에 대해 “재택근무는 업무를 지연시킨다”며 “모두가 팀으로 일하기 위해 직원들은 회사에 나와야 한다”고 일갈했다. 물론 메이어가 멸종 위기에 처한 ‘IT 공룡’ 야후를 부흥시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따라 야후는 물론 실리콘밸리 전체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38세인 금발의 여성 CEO를 주목하는 이유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연 ‘성공의 문’

성공하는 여성이 ‘여성 최초’의 타이틀을 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메이어는 24세인 1999년 구글에 입사했을 때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최연소’ 타이틀까지 거머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 50’에 2008년 이후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 선정에서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29)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CEO로 꼽혔다.

이 같은 승승장구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 온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재능이 자리잡고 있다.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미술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이어는 1993년 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 청년 과학캠프의 웨스트버지니아주 대표로 지목되는 등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덕분에 대학 진학 당시 10개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은 메이어가 선택한 곳은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였다. 스탠퍼드의 실용적인 교육과 학생들의 창업을 독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호시스템 학사와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등졸업이었고, 학생 신분으로 강단에 서는 일도 있었다.

○구글에서 경영을 배우다

이쯤 되면 대학 졸업 당시 1999년 14개 업체가 메이어에 ‘러브콜’을 날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메이어가 선택한 곳은 신생기업이던 구글이었다. 지금은 세계 2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IT회사 구글에 20번째로 입사한 것이다. 회사의 명성보다 엔지니어의 눈으로 평가한 검색엔진 자체의 성능을 통해 가고 싶은 회사를 선택한 그의 선택은 맞아떨어졌다.

메이어는 이후 13년간 구글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제품 관리자 등을 거쳐 임원까지 오르며 맹활약했다. 검색엔진은 물론 뉴스, 지도, 툴바, G메일 등 구글의 핵심 서비스 개발과정에 참여했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다채롭게 꾸며지는 구글의 초기 화면 역시 메이어가 감독했다.

구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주특기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이외에 직원들을 관리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법을 배웠다. 구글의 개발자와 서비스 관리자를 교육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꾸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00여명의 구글 직원을 관리하며 250여개의 서비스 개발에 기여했다. 구글 퇴사를 결정할 당시 그의 최종 직함은 지역·위치 기반 서비스 담당 부사장이었다.

○모바일 통해 야후 재건 시도

‘사회에서 성공하는 여성은 외롭다’는 편견과 달리 2009년 부동산 개발업자인 자크 버그와 결혼한 메이어는 결혼생활도 순조롭다. 야후 CEO로 취임하고 석 달 뒤인 작년 10월에는 아들을 낳고 출산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승승장구해 온 ‘알파걸’ 메이어가 처음으로 난관에 직면한 무렵이기도 하다. 2012년 초 창업자 제리 양 등 경영진이 대거 퇴진한 야후는 감원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지만, 실적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IT기업의 핵심 자산인 인력 이탈도 이어지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CEO 경험이 없는 메이어가 흔들리고 있는 야후의 사업전략과 비전을 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CEO 취임 이후 조직 기강을 바로잡은 메이어는 3분기 연속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올 들어 1분기에도 야후의 매출은 11억4000만달러, 순이익은 3억9000만달러로 시장 예상(11억달러)을 뛰어넘었다.

주력사업을 안정화시킨 메이어는 다른 영역으로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들여 SNS기업 텀블러를 인수한 것이 단적인 예다. 메이어는 야후를 떠난 젊은 네티즌의 발길을 잡기 위해서는 모바일 시장 공략이 필수라고 보고, 과감한 인수합병(M&A) 행진에 나섰다. 작년 10월 모바일 기반 관심 공유서비스인 스탬프트를 시작으로 모바일 스케줄링 서비스 아스트리드, 뉴스 요약 애플리케이션(앱)인 섬리까지 모바일 벤처기업 7개를 줄줄이 사들였다. 모바일 인력도 크게 늘렸다.

메이어의 승부수가 적중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앞으로 어떤 기업을 추가로 인수하느냐, 새로 사들인 기업들이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성적표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IT 알파우먼’이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