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극은 불완전한 인간존재에 대한 찬양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거의 언제나 불행에 빠진다. 하지만 비극이 그런 인간들을 애도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불행 속에서 더 빛나는 내면의 힘, 그 재앙 속에서 인물들이 도달하는 어떤 높이를 보여주는 것이 비극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불완전한 존재에게나 열린 가능성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 사는 신들에게는 오히려 그 가능성이 닫혀 있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 씨는 《비극의 비밀》에서 비극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가혹한 운명이 주어져도 그 운명이 어떤 형벌을 내릴지 알 수 없어도 기어이 진실을 대면하고 현실을 개선해 나가는 게 인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12편을 통해 삶의 비극적인 모습과 이를 극복하는 인간을 발견해 나간다.

[책마을] 비극은 불완전한 인간존재에 대한 찬양이다
대표적인 게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다. 이 작품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대략의 줄거리와, 프로이트가 만들어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아버지를 증오·질투하고 어머니에게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갖는 경향)’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자주 이 작품을 신들의 예언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운명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끔찍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고 그것과 마주한다.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 자기 자신인지를 확인해줄 이의 입을 여는 건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다. 오이디푸스는 “나도 듣기 무서운 진실 앞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여러 차례 진실 앞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끝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대면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목매달아 죽고,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찌른다. 저자는 이 행동까지 일시적인 충동이 아닌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다’는 오이디푸스의 주체적인 선언으로 해석한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인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3부작을 인간 사고의 발전 과정으로 읽는다. 아가멤논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인 왕 아가멤논을 죽인다. 표면적으로는 치정에 의한 살인이지만 사실은 아가멤논의 아버지 대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가족 살인의 되풀이다.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내의 모습을 한 복수의 악령으로 운명을 대행했을 뿐이다. 7년 후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이 끝없는 복수가 끝나는 건 ‘자비로운 여신들’에 이르러서다. 여기에서 오레스테스는 ‘재판’을 받고 풀려난다. 새로운 제도로 잔혹한 복수극이 끝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인간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끝없는 피의 복수는 어디선가 중단돼야 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인류 역사에서 사고가 비약하는 순간을 재현해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작품들의 줄거리뿐 아니라 형식과 기술적인 면도 설명한다. 작품들은 특정 시대의 특정 상황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상연되던 것이고, “어떤 분야에서든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려면 형식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작품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다면 책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 또한 책 속에서 자주 예습을 권하고 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