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칼럼] "더 마르고 싶어"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들, '거식증' 그냥두면 치명적
최근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청소년 건강 행태조사’에 따르면 정상 체중 여학생의 35.6%가 자신이 살이 쪘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학생의 20.1%가 체중 감량을 위해 구토와 단식, 다이어트, 약물 복용 등 비정상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19.5%는 격렬한 운동에 집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정상적인 체중 감량 행동의 대다수는 ‘섭식장애’ 증상이다. 섭식장애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체중·체형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비정상적인 체중 감량에 나서는 병이다. 외모지상주의적 분위기와 관련된 선진국형 질환이다.

섭식장애는 ‘비밀스러움’이 특징이다. 자신의 상태를 감추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증상이 심해져 주변에서 인지할 정도가 되면 이미 건강상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섭식장애는 정신적·신체적 건강이 함께 악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섭식장애 중 하나인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흔히 거식증이라 불린다.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가장 치명적인 질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거식증을 청소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할 질환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청소년기는 일생 중 뇌 신경세포의 가지치기가 가장 활발한 시기인데, 이때 섭식장애로 인해 영양이 부족하면 뇌 발달에 지장을 가져와 생각의 경직, 감정 조절의 어려움, 학습능력 저하로 직결된다.

예컨대 이 시기 뇌 발달의 정체는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적절한 정서 조절이나 사회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 젊은 여성의 섭식장애는 본인은 물론 2세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섭식장애 여성은 임신 후 유산 혹은 저체중 자녀 출산율이 높고, 섭식장애 어머니의 자녀는 저체중이나 섭식장애 발병률이 높다.

섭식장애는 심각하긴 하지만 조기에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 현실에서 섭식장애는 의료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대다수 민간보험은 섭식장애의 2차적 합병증을 보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섭식장애에 대해서는 보험 적용을 하지 않는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증상을 감추면서 합병증 치료만 해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만성화된 섭식장애 환자들의 20%는 정신적·신체적으로 쇠약해져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 전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해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치성 섭식장애 환자들은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등록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섭식장애를 간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견 사회적으로 이 병을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각종 방송·연예 프로그램은 오로지 ‘살 빼기’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사회 전반적으로 지나친 다이어트를 권장하지 않는 문화가 조성돼야 할 때다.

김율리 <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