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을 불러온 부품비리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내용 외에도 다수의 비리가 존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100일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의혹을 명확히 해소하지 않으면 원전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지난 정부 때도 원전 관련 각종 비리가 적발됐지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에는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심정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등이 지난해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 비리 사례를 대거 적발했음에도 검찰 수사 등 적절한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비리의 싹’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국내 납품 업체(2곳)가 87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138개 품목, 966개 부품)해 제출하고 업체들이 납품가액을 높이기 위해 담합 입찰하는 등 부당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전 정부 때 발생한 부실조치가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사원 감사나 원안위 조사에서 밝혀진 내용 외에 추가 비리가 존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원안위가 지난 28일 제어케이블 문제를 발표한 이후 전반적으로 조사해보니 원전 부품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비리가 적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물밑에 거대한 비리 커넥션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전면 재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날 절전을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취소하고 원전과 관련된 모든 비리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감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도 추가 비리를 완전히 밝혀낸 다음에야 국민에게 절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 총리의 30일 오후 대국민 담화 취소는 청와대와 조율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 부처들이 원전 비리가 발생하면 현장 책임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2월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사고 은폐가 드러났을 때 원안위는 김종신 한수원 당시 사장은 제외하고, 현장 책임자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월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원자력안전법과 방재대책법상 원전사고를 보고해야 할 의무는 한수원이나 대표이사에게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보고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처벌한 원심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은폐 사실이 알려진 지 2개월이나 지나서야 물러났다.

도병욱/조미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