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거침없이 내달리는 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차종도 다양하지만 국산차 중에선 유독 두 차종이 자주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의 4세대 그랜저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베라크루즈다. 특히 베라크루즈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쯤 시승해보고 싶었다. 박영후 한국보쉬 디젤시스템 사장도 일전에 기자와 만나 “베라크루즈에 탑재되는 S엔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엔진”이라고 극찬했다. 자동차업계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박 사장의 흔치 않은 후한 평가이기에 흥미가 더했다. 최근 베라크루즈를 타봤다.

시승한 차량은 베라크루즈 300VXL. 배기량 3000cc짜리 6기통 디젤 엔진(S엔진)을 얹은 전륜구동(2WD) 모델이었다. 출시된 지 6년째를 맞은 탓인지 외관 디자인이 큰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절제된 선과 부드러운 곡면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렉서스 등 고급 브랜드와 견줘도 뒤지지 않았다. 베이지 색상의 시트와 대시보드는 우아한 감성을 더했다. 티타늄 트림을 배치한 스티어링휠(운전대)도 인상적이었다.

베라크루즈의 진짜 매력은 주행성능에 있었다. 정지상태와 주행 때는 가솔린 엔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소음과 진동을 잘 억제했다. 가속 때 들리는 배기음이 비로소 디젤 엔진임을 알게 해줬다. S엔진의 파워는 부족함이 없었다.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46.0㎏·m의 힘은 큰 차체를 부드럽게 끌고 나갔다. 고속주행 안전성도 만족스러웠다. 이전에 시승했던 싼타페 7인승 모델 맥스크루즈의 4기통 엔진과 비교했을 때 6기통 디젤 엔진의 우위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핸들링이 직관적이거나 코너를 날카롭게 돌아나가진 않았다. 역동적인 성능보다 부드럽고 여유있는 주행에 집중했다.

지난해 베라크루즈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현대차가 같은 7인승 모델인 맥스크루즈를 내놓으면서 베라크루즈를 단종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고민 끝에 베라크루즈를 계속 판매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렉서스 RX350과 같은 럭셔리 모델을 겨냥해 개발한 플래그십 SUV로서 의미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반응도 꾸준하다. 맥스크루즈 출시 후에도 베라크루즈(3842만~4483만원)는 월 300여대의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4000만원대의 국산차를 산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베라크루즈는 수입차의 대항마로 어느 정도 제 몫을 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가격을 조금 낮출 필요는 있다. 출시된 지 6년이나 됐으니 한 번쯤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해도 되지 않을까? 수입차들처럼 말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