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굴 믿고 투자하나
“정부가 하라는 대로 투자해도 될지 모르겠다.”

3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소집한 자리에 다녀온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윤 장관은 이날 오후 삼성전자 현대제철 LG화학 등 20개 대기업 경영진을 불러 “국가적 재난을 막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며 절전을 당부했다. 오전엔 제6회 ‘비철금속의 날’ 행사에 참석, “비철금속업계가 전력위기 극복에 앞장서달라”고 부탁했다.

윤 장관의 자세는 두 달여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지난 4월4일 30대 그룹 사장단을 불러 모아 투자 확대를 압박했다. 기업들은 149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그런지 두 달 만에 ‘전기가 없으니 공장 가동을 쉬어달라’고 한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찜통 더위 속에도 실내온도를 높이고, 넥타이를 푸는 등 블랙아웃(대정전)을 막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를 시행해와 더 이상 절전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삼성전자 등 전자업계는 3분기 최대 성수기를 앞두고 바쁘다. 현대자동차는 수출 물량이 밀려 있다. 이대로 공장을 돌렸다간 전기요금도 평상시보다 3배 더 내야 하고(선택형 피크요금제), 과태료까지 물어야 할 판이다.

정부는 몇 달만 참으면 새 원전(신고리 3호기)이 가동돼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업은 정부 약속을 믿을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 한다. 오는 12월 완공을 앞둔 신고리 3호기는 8년째 중단된 밀양 송전탑 공사로 전기를 보내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06년부터 지역주민들이 반대해왔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온 당국이다. 화력발전소도 인천 삼척 등 곳곳에서 반대 시위로 착공이 불투명하다. 신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강화도, 아산만, 가로림만 등 조력발전 예정지 모두 환경단체 반대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무산됐다.

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인 원전 비리도 납득하지 못한다. 작년 11월 납품 비리가 처음 불거지자 당시 지식경제부는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책임을 떠넘겼고, 책임진 공무원은 없었다. 2011년 ‘9·15 정전대란’을 겪고도 나아진 건 없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력난이 심해지자, 니콘 스미토모화학 등 기업들이 줄줄이 공장을 해외로 옮겼다. 정부는 언제까지 기업들에 절전이나 애국심만 강조할 것인가.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