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ed 탄생 100년] "Fed 100년간 보수-진보 잔인한 대결…물가안정-완전고용 사이 줄타기 진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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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경제대통령' 그린스펀 前의장에게 듣는다
FOMC 회의 중 재무위원장 전화받기도
정치권이 과도한 정부 부채 문제 해결해야
美증시 저평가…양적완화 부작용 작을 것
FOMC 회의 중 재무위원장 전화받기도
정치권이 과도한 정부 부채 문제 해결해야
美증시 저평가…양적완화 부작용 작을 것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 미국 경제가 더 좋았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8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한 말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우드로윌슨센터가 개최한 세미나의 기조연설에서다.
그의 ‘뼈있는 농담’ 한마디에 Fed 역사의 굴곡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때로는 부작용을 불러와 경기 진폭을 확대시켰다는 점을 Fed의 산증인인 그린스펀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기조연설 도중에 방청객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크게 울리자 그는 “나는 항상 비난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세미나 현장에서 그린스펀 전 의장을 만나 Fed 100년 역사와 미 경제 전망 등을 들어봤다.
◆“중앙은행은 항상 정치적 이슈에 직면”
그린스펀 전 의장은 “Fed는 출범부터 정치적 이슈를 안고 탄생했고, 그 이후에도 정치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3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우드로 윌슨 대통령(민주당)은 공화당 의원들이 대부분 성탄절 휴가를 간 틈을 타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을 날치기하듯 통과시키고 서명했다. 이날이 Fed의 출범일이고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다. 그전에는 통화감독청(OCC·150주년)이 중앙은행 역할을 대신했다.
당시에는 JP모건 씨티은행 등 연방정부 산하 내셔널은행들이 화폐를 발행했으며 OCC가 이들 은행의 건전성 감독을 맡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윌슨 대통령은 JP모건을 필두로 하는 월가의 ‘금융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화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Fed 법안을 마련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8년간 Fed를 이끌면서 상당한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책 결정을 앞두고 의원들의 관심과 우려, 그리고 FOMC 위원들에게 개별적인 압박이 쏟아질 때가 적지 않았다”며 “한 하원 재무위원장은 FOMC 회의 도중에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측은 “당선되면 (돈을 무한정 찍어내는) 벤 버냉키 Fed 의장을 당장 갈아치우겠다”며 Fed의 경기부양책을 공격했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FOMC는 연방정부의 어떤 부처 및 기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거나 정책 결정이 뒤집어질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며 “FOMC의 결정은 투명하게 진행되고 회의 때의 모든 발언이 5년 뒤에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의 재임 기간에 외부 압력으로 정책 결정이 뒤집어진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Fed의 100년 역사는 보수와 진보 간의 잔인한 대결 과정이었다”고 정의했다.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국가부채 축소 해결해야”
그린스펀 전 의장은 강연 후 Fed의 ‘양적완화(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금융완화 정책)’ 영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후임자의 정책 결정에 대해 코멘트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러나 “정치권이 국가채무를 줄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자산 거품이나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양적완화의 부작용보다 정부의 과도한 부채(16조4000억달러)가 미국 경제의 복병이라는 지적이다. 상·하원이 머리를 맞대 늘어난 정부 예산을 줄이고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재정적자 감축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최근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증시는 최근 급등세를 고려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1996년 미 증시가 거침없이 상승할 당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말로 주식시장의 거품을 경고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거품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자산가격 상승 덕분에 연초 단행된 세금 인상이 소비지출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를 낙관했다.
그는 Fed의 양적완화 및 출구전략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Fed의 출구전략에) 시장이 먼저 반응을 보일 것이고 이후 투자자들도 초저금리의 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날 것”이라며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87세인 그린스펀은 Fed를 떠난 후 워싱턴에 금융컨설팅회사 ‘그린스펀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회사인 핌코와 도이체방크 등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8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한 말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우드로윌슨센터가 개최한 세미나의 기조연설에서다.
그의 ‘뼈있는 농담’ 한마디에 Fed 역사의 굴곡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때로는 부작용을 불러와 경기 진폭을 확대시켰다는 점을 Fed의 산증인인 그린스펀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기조연설 도중에 방청객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크게 울리자 그는 “나는 항상 비난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세미나 현장에서 그린스펀 전 의장을 만나 Fed 100년 역사와 미 경제 전망 등을 들어봤다.
◆“중앙은행은 항상 정치적 이슈에 직면”
그린스펀 전 의장은 “Fed는 출범부터 정치적 이슈를 안고 탄생했고, 그 이후에도 정치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3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우드로 윌슨 대통령(민주당)은 공화당 의원들이 대부분 성탄절 휴가를 간 틈을 타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을 날치기하듯 통과시키고 서명했다. 이날이 Fed의 출범일이고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다. 그전에는 통화감독청(OCC·150주년)이 중앙은행 역할을 대신했다.
당시에는 JP모건 씨티은행 등 연방정부 산하 내셔널은행들이 화폐를 발행했으며 OCC가 이들 은행의 건전성 감독을 맡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윌슨 대통령은 JP모건을 필두로 하는 월가의 ‘금융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화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Fed 법안을 마련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8년간 Fed를 이끌면서 상당한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책 결정을 앞두고 의원들의 관심과 우려, 그리고 FOMC 위원들에게 개별적인 압박이 쏟아질 때가 적지 않았다”며 “한 하원 재무위원장은 FOMC 회의 도중에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측은 “당선되면 (돈을 무한정 찍어내는) 벤 버냉키 Fed 의장을 당장 갈아치우겠다”며 Fed의 경기부양책을 공격했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FOMC는 연방정부의 어떤 부처 및 기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거나 정책 결정이 뒤집어질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며 “FOMC의 결정은 투명하게 진행되고 회의 때의 모든 발언이 5년 뒤에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의 재임 기간에 외부 압력으로 정책 결정이 뒤집어진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Fed의 100년 역사는 보수와 진보 간의 잔인한 대결 과정이었다”고 정의했다.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국가부채 축소 해결해야”
그린스펀 전 의장은 강연 후 Fed의 ‘양적완화(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금융완화 정책)’ 영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후임자의 정책 결정에 대해 코멘트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러나 “정치권이 국가채무를 줄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자산 거품이나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양적완화의 부작용보다 정부의 과도한 부채(16조4000억달러)가 미국 경제의 복병이라는 지적이다. 상·하원이 머리를 맞대 늘어난 정부 예산을 줄이고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재정적자 감축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최근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증시는 최근 급등세를 고려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1996년 미 증시가 거침없이 상승할 당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말로 주식시장의 거품을 경고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거품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자산가격 상승 덕분에 연초 단행된 세금 인상이 소비지출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를 낙관했다.
그는 Fed의 양적완화 및 출구전략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Fed의 출구전략에) 시장이 먼저 반응을 보일 것이고 이후 투자자들도 초저금리의 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날 것”이라며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87세인 그린스펀은 Fed를 떠난 후 워싱턴에 금융컨설팅회사 ‘그린스펀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회사인 핌코와 도이체방크 등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