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계농가들이 모여 있는 전북 익산시 함열읍 일대. 여름 닭고기 성수기를 앞두고 한창 바빠야 할 이곳은 한가롭기만 했다. 하림 등 닭을 사가야 할 업체들이 지난해 적자 등으로 구매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20년 동안 닭을 키워온 S농장 대표 소삼 씨(49)는 2010년까지 개인농장을 운영하다 지난해 닭고기업체 하림의 계열농장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는 “지난해엔 닭을 일곱 번 생산했는데 올해는 지금이 성수기인데도 40일째 병아리를 못 받고 있다”며 “올해는 다섯 번을 채우면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난해 계열농장 계약을 맺으며 시설을 최신식으로 바꾸느라 은행에서 16억원을 빌렸는데 이자를 갚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2. 서울 남가좌동의 한 시장 골목에 있는 K닭집. 4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세탁기 두 대와 냉장고가 전부였다. 닭을 손질할 수 있는 시설은 아예 없지만 지난 5년간 시내 닭내장탕집 등에 닭 내장만 100여t을 팔았다. 닭 내장 유통과정은 충격적이었다. 이곳을 운영해온 일당이 닭 내장을 공급받은 곳은 개사육장. 개사료용으로 버려진 닭 내장을 받아와 손질해 내다 팔았다. 세탁기는 닭 내장 세척용이었다. 세척한 닭 내장을 칼로 손질해 그대로 식당 등에 공급했다. 이 일당은 최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적발돼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경찰이 4대악 근절을 선언하고 단속을 시작한 지난 3월8일부터 100일째인 지난달 31일까지 적발된 부정·불량식품 제조·유통 사범은 모두 1225건. 이 중 불법 닭고기 유통으로 적발된 건수가 40%를 웃돈다는 것이 경찰 측 설명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불법 유통은 10%에 못 미쳤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냉동 닭이나 사료용 닭고기 등을 유통시키다 적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경찰이 불량식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다보니 적발 건수가 늘어난 것이 1차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 다른 육류에 비해 닭고기 불법 유통이 유독 많은 데엔 수입산 닭고기가 자리잡고 있음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외국산이 급격히 늘어나 국내 양계농가의 닭들이 남아돌면서 돈벌이를 위해 ‘닭 장난’을 치는 불법 유통업체들이 생겨나고, 폐닭이 삼계탕용이나 호프집 튀김닭 용도로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소나 돼지에 비해 닭고기 유통은 추적이나 적발이 힘들고, 처벌도 벌금형으로 가벼운 점도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북 익산시 함열읍에 있는 양계농가. 복날을 앞둔 성수기지만 토종닭 농장인 이곳의 양계시설 8개 중 일부는 텅 비어 있다.  /익산=김태호 기자
전북 익산시 함열읍에 있는 양계농가. 복날을 앞둔 성수기지만 토종닭 농장인 이곳의 양계시설 8개 중 일부는 텅 비어 있다.  /익산=김태호 기자

○폐닭 증가 부추기는 닭고기업계 위기

폐닭 불법 유통의 검은 시장이 형성된 데는 최근 국내 양계농가의 전례없는 위기가 한몫했다. 매년 수입 닭이 늘어나면서 국내산 닭의 수요는 계속 감소세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실적 기준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은 11만8142t으로 2009년 5만8466t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 들어온 수입 닭은 전체 유통 규모의 25% 정도를 차지한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국내 닭이 95% 정도였지만 수입 닭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20%포인트가량 낮아졌다. 국가별 수입량은 지난 4월 말 기준 미국 3426t, 브라질 2605t, 덴마크 119t, 헝가리 23t 순이었다. 미국·브라질에서 들여오는 냉동 닭다리는 1㎏당 2700원으로 국내산(3000원)보다 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닭고기 생산업체에는 팔리지 않는 닭이 넘쳐난다. 닭고기 공급업체 관계자는 “닭다리 등 부분육은 팔리지 않아 냉동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유통기한이 지나면 사료용으로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대형 닭고기 수요업체들의 실적 악화도 수요 기반을 위축시키고 있다.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은 지난해 모두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했다.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이상 적자가 났다.

사정은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도 마찬가지다. 양계농가는 크게 개인농장과 계열농장으로 나뉜다. 계열농장은 하림 등과 계약을 맺고 병아리를 제공받아 닭으로 키운 뒤 업체에 다시 납품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계열농장은 1년에 7회 정도 닭을 키워냈다. 하지만 대형 업체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닭을 키우지 못하는 농장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농장은 더 심각하다. 개인농장은 닭의 시세가 좋아질 때 닭을 키워 팔아 이득을 본다. 그러나 닭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닭을 제대로 팔지 못하고 있다.

한국계육협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생계 1㎏ 가격은 1890원. 2011년 2583원에 비해 36%가량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일부 개인농장은 불법 유통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팔리지 않은 닭은 냉동 보관했다가 유통기한이 지나도 시세가 좋은 성수기 때 내다 팔거나, 불법 도축시설에서 닭을 직접 도축하는 것이다. 지난달 전남 순천 등지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닭을 불법 유통한 농장주인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되기도 했다.

불법 닭 유통업자들은 이런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식용이 아닌 사료용이나 유통기한이 다된 냉동 닭을 대량으로 매입해 정상 닭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이다. 전남 나주의 H사는 최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닭을 불법 유통시킨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는데, 이들이 H사에서 닭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회사 관계자는 “사료용으로 포장한 닭을 팔았는데 그 닭이 정상 닭으로 둔갑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림 관계자는 “사료용 닭이 식용으로 둔갑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잦아 유통업자들에게 닭을 공급할 때 검증 과정을 철저하게 거치도록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킨집·삼계탕집에도 폐닭 유통

개사료용 닭 내장을 공급받아 세탁기에 세척하는 모습. /서대문경찰서 제공
개사료용 닭 내장을 공급받아 세탁기에 세척하는 모습. /서대문경찰서 제공
판로가 막힌 양계농가의 폐닭을 불법으로 사고팔 수 있는 유통구조와 느슨한 도축 감독 시스템도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닭고기는 돼지고기 등에 비해 유통과정이 매우 다양하다. 계열농장은 대형업체와 계약을 맺어 일원화돼 있지만, 개인농장에서 키운 닭은 허가를 받지 않은 도축·유통업자를 거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찰에 적발된 유통업자들은 주택 건설 예정지에 창고용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닭고기를 시중 치킨집 등에 공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까지 받은 식육전문 유통업체에서도 유통기한이 지난 냉장 닭 등을 판매한 사례까지 있다.

계육협회 관계자는 “닭고기는 유통 경로가 매우 다양해 추적하기가 쉽지않다”고 토로했다.

공무원이 도축시설에 배치되지 않아 감시가 느슨한 것도 닭고기 불법 유통의 원인이다. 돼지나 소 도축장에는 책임공무원이 배치돼 도축 과정을 감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닭고기는 도축장에 고용된 수의사가 이 과정을 맡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올 1월부터 하루 10만마리 이상 도축하는 곳에는 공무원을 배치하고 있지만 무허가 도축시설에서 도축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아 관리가 쉽지 않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늘어나면서 시중 치킨집들이 벌이는 과도한 가격경쟁도 문제다. 단가를 조금이라도 낮춰 이익을 챙기려는 시중 치킨집들은 시세보다 싼 닭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이런 곳들은 공급과정이 투명하지만 여름철 길거리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은 공급처가 어디인지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찰에 적발된 유통업자들은 대부분 폐닭을 가공해 길거리 닭 판매업자나 호프집 등에 주로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닭고기 유통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100% 본사에서 치킨을 공급받아야 하지만 단가를 좀 더 낮추기 위해 일부를 다른 유통경로로 싸게 공급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적발돼도 대부분 영업정지…실형선고율 0.4% 그쳐

[경찰팀 리포트] 혹시 어제 먹은 치킨도…사료용 닭 '식탁 습격사건'
국내에서 불량 닭고기를 유통하다 적발되더라도 처벌수위는 영업정지 정도에서 끝난다.

서울 노원구 불암산에 있는 A유통업체는 유통기한이 지난 파계(다리 및 날개가 부러진 닭) 냉장 닭을 싼 가격에 대량 구입해 급속냉동했다가 해동시키고 유통기한을 늘려 정상 제품인 것처럼 식당 등에 팔다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 업체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검거된 일당은 불구속입건된 상태로 영업정지 1주일이 처벌의 전부였다. 경찰 관계자는 “불량 닭 유통으로 검거해도 대부분 구속수사하기 어렵고 처벌은 벌금형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불량식품 유통업자들의 경우 처벌이 약하다보니 재범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고 허탈해했다.

201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식품위생법 위반사범의 1심 판결에서 61.38%가 벌금형을 받았다.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0.4%에 불과했다. 미국에선 식품위해사범에 대한 실형 선고율이 36.5%에 달한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하고 식품위생법 개정에 나선 것도 불량식품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불량식품을 반복, 고의적으로 제조하고 판매한 범죄자에게 ‘기존 7년 이하 징역’에서 ‘1년 이상, 7년 이하 징역’의 형량하한제를 적용하고 부당이득을 최대 10배까지 환수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경찰 관계자는 “닭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세균의 번식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불특정 다수의 시민 건강을 위협하는 범죄인 만큼 처벌이 강화되면 범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육협회 관계자는 “양계농가 및 닭고기업계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불량 닭 유통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닭 소비 자체가 줄어들까 걱정”이라며 “불량 닭 범죄를 줄이기 위해 수사당국도 노력해야겠지만, 국산 닭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대형마트 등에서 지원해준다면 불법 유통이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김태호/홍선표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