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 이상봉·이청청 父子 "수많은 옷 디자인 했는데 아들에겐 옷 한 벌 못 만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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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유혹에도 빠져봐야 좋은 디자이너로 크는데 아들 교과서 같기만 해 걱정"
子 "맑고 푸르게 자라라고 淸靑이라는 이름 지어주고선…"
놀이동산 한 번 같이 못갔는데 이젠 같은 길 걷는 파트너
子 "맑고 푸르게 자라라고 淸靑이라는 이름 지어주고선…"
놀이동산 한 번 같이 못갔는데 이젠 같은 길 걷는 파트너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AA.7527185.1.jpg)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인 이상봉 ‘이상봉컬렉션’ 대표는 아들 청청씨(34)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고 했다. 그는 일요일에만 간신히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아들이 어느새 다 자라 어릴 적 함께 못한 시간을 되찾으려는 듯 파트너가 돼 매일 곁을 지키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청청 씨는 2010년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예술대 아트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이상봉컬렉션에서 디자인팀장을 맡았다. 이 대표는 “아들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더 혹독하게 가르친다”고 말했지만 이 팀장이 올초 브랜드 ‘라이(LIE)’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인 것 같다.
성격과 취미가 완전히 다르고, 이 팀장이 어릴 때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는 이씨 부자는 지금 디자이너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직업인으로서 ‘동지’가 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26일 약속 장소인 서울 삼성동의 스페인 음식점 ‘부엔까미노’에 나타난 이씨 부자는 똑같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나이는 묻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는 이 대표의 말이 떨어지자 이 팀장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크게 웃는다. 다른 듯 닮은 이들과의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2세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법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 이상봉·이청청 父子 "수많은 옷 디자인 했는데 아들에겐 옷 한 벌 못 만들어줘"](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01.7529276.1.jpg)
이 팀장에게 궁금한 걸 먼저 물었다. ‘디자이너지만 옷 한 벌 안 만들어주는 아버지’였는데, 서운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한 건 무슨 까닭인지….
“디자이너가 된 계기를 꼽자면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패션쇼를 구경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 아버지가 이렇게 바쁠까’ 늘 궁금했는데, 쇼장에서 저도 어떤 희열을 느꼈거든요. ‘아, 이래서 디자이너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 팀장에겐 ‘이상봉의 아들’이란 타이틀이 늘 따라붙는다. 주변의 기대감이 크다는 얘기다. 이상봉컬렉션이라는 큰 작업실에서 디자이너 일을 배우는 혜택도 누렸다. “다른 디자이너 선·후배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이고요. 그러나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부담이죠. 아버지 말씀대로 ‘정석대로, 마지막까지’ 가다보면 ‘디자이너 이청청’을 알아봐주겠죠.”
치즈를 얹은 아스파라거스와 관자 구이 접시에 손을 뻗던 이 대표가 이 대목에서 끼어들었다. 그는 “디자이너를 포함해 유명 예술가의 2세 중에 실패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며 “‘부모를 뛰어넘는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배우 하정우 씨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버지(배우 김용건 씨)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방금 전까지 안쓰러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자신의 일 앞에 타협이란 없는 ‘디자이너 이상봉’의 모습이었다.
○자유로운 아버지, 올곧은 아들
이 팀장은 “디자이너로서 이상봉은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이 대표는 먹물을 입힌 모차렐라치즈 튀김을 집으며 연방 머쓱해 했다. 그는 “어릴 적엔 대화도 거의 안 했는데, 요즘 들어 인터뷰 같은 이런 자리에서 아들의 속마음을 듣게 됐다”며 웃었다.
인터뷰 중간 사진기자의 플래시가 터지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저명인사다운 ‘포스’였다. 반면 아직 인터뷰가 어색한 30대 아들은 모범생같이 경직된 자세였다. 이 대표는 “더 환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려봐”라며 아들의 사진 포즈까지 일일이 챙겼다. 이 대표가 ‘자유로운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면, 이 팀장은 ‘흰색 도화지’ 같은 느낌이었다.
“디자이너라면 아름다운 소설처럼 뱀의 유혹에도 빠져보고, 또 아파하기도 해야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청이는 교과서처럼 너무 올바르고 곧아요. 그래서 걱정이죠.”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이 입을 뗐다. “아버지, 제 이름이 맑을 청(淸)에 푸를 청(靑)이에요. 맑고 푸르게 자라라고 직접 지어주셔놓고 이제 와서 ‘뱀의 유혹에도 빠져보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한바탕 웃음이 번져가는데 올리브 오일로 맛깔나게 만든 봉골레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해산물 파스타가 나왔다. 두 부자는 맛있게 먹으며 금세 비워냈다. 부자간에 닮은 점이 많은지 궁금했다. 이 대표는 “성격부터 밤문화까지 다 다르다”고 했다. “1주일에 나흘은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는데, 제 술친구 중엔 청이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거든요.” 역시 이 대표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 스페인 음식점도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친구들과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이 팀장은 “예전에 아버지는 맥주 한두 병밖에 못 드셨는데, 나이 들수록 주량이 점점 늘고 있다”며 “술자리에 같이 가보면 20대부터 60~70대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계셔서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이 팀장 자신은 소주 한 병 반 정도는 마신다고 했다.
○6년 전 수술 뒤 ‘덤으로 얻은 인생’
“다음엔 저녁 때 만나자”는 얘기를 나눌 무렵, 스페인 요리를 대표하는 해산물 파에야(볶음밥의 일종)가 나왔다. 노란 쌀알과 큼지막한 새우, 홍합, 조개, 오징어가 먹음직스러웠다. 이럴 때 ‘돌직구’를 날려야겠다 싶어 “그런데 왜 나이를 밝히지 않으세요?”라고 이 대표에게 물었다. 그는 “37세 때 연극하는 후배들이 ‘형도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걸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디자이너로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이까지 들어간다고 하니까 무섭더라고요. 그 뒤론 나이를 세지 않고 무조건 서른일곱 살이라고 말하죠. 요즘 몇몇 친구들이 ‘우리 내일모레 환갑’이라는 말을 하면 전 깜짝 놀라서 ‘너 그렇게 늙었어?’라고 한다니까요.”(웃음)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 이상봉·이청청 父子 "수많은 옷 디자인 했는데 아들에겐 옷 한 벌 못 만들어줘"](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AA.7527219.1.jpg)
“다음 패션쇼 테마는 아리랑 … 큰 무대 함께 만들것”
가만히 듣고 있던 이 팀장은 “나이를 잊고 사는 건 좋지만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운동을 안 하셔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6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정기 건강검진을 했는데 몸 속에 종양 같은 게 발견됐어요. 의사가 ‘죽을 확률이 50%’라고 해서 미국에 있는 딸(이나나 씨) 결혼식에도 못 갔거든요. 하루에 1㎏씩 빠지고 매일 악몽을 꾸고, 준비 중이던 패션쇼도 다 접었죠. ‘내가 죽으면 몇 명이나 찾아올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모든 신과 조상님까지 찾으면서 ‘아무 문제 없게 해주세요. 그러면 남은 인생은 ‘보너스’로 생각하고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게요’라고 기도했죠.”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이 대표는 그 뒤로 중·고교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까지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디자이너의 꿈을 꾸는 학생들의 이메일에 시간 날 때마다 답해주고, 어린이신문에 기고하거나 멘토링 행사에 강연을 가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 패션쇼는 ‘아리랑’ 테마로
식사가 끝난 뒤 시원한 커피를 주문했다. 요즘 내년 봄·여름 패션쇼 준비로 한창 바쁠 때인데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이 대표는 “아리랑을 접목시킨 옷을 청이와 함께 만들고 있다”며 “화선지에 무궁화 꽃으로 형상화한 음표를 붓으로 그려넣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10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한·오스트리아 수교 50주년 기념 패션쇼도 청이와 같이 멋지게 꾸밀 겁니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다웠다.
마지막으로 부자 디자이너에게 꿈을 물었다. 이 대표는 “100년 뒤에도 이상봉이라는 브랜드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고요, 매장 안에 한글 옷이 걸려 있길 소망해요”라고 했다. “아버지와 큰 무대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또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들’이 아니라 ‘이청청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해야죠.
” 이 팀장이 답했다. 작업실까지 걸어가면서 아버지는 또 일 얘기만 할 것이라는 이 팀장의 표정은 오후 햇살처럼 환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 이상봉·이청청 父子 "수많은 옷 디자인 했는데 아들에겐 옷 한 벌 못 만들어줘"](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AA.7527132.1.jpg)
이상봉 디자이너의 단골집 부엔까미노 샤프란 파에야에 전채요리 다양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 이상봉·이청청 父子 "수많은 옷 디자인 했는데 아들에겐 옷 한 벌 못 만들어줘"](https://img.hankyung.com/photo/201306/AA.7528495.1.jpg)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는 오늘의 브런치(9500원), 오늘의 수프와 토스트(7000원), 햄버그스테이크(9500원), 쌀국수면을 넣은 얼큰한 해산물 토마토 수프(9500원) 등의 런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02)3453-9726
민지혜/임현우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