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하 17개 투자·출연 기관은 이달부터 직원을 채용할 때 출신학교와 가족관계 기록 등을 없앤 표준이력서를 사용키로 했다고 한다. 표준이력서에는 사진, 신체사항, 가족사항은 물론 출신학교, 학점, 외국어점수 등도 적어선 안 된다. 연령과 남녀 차별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각 앞자리 1개 번호도 ‘X’로 표기토록 했다. 대신 직업교육, 직무관련 활동과 자격 등을 중심으로 표준이력서를 기재토록 한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스펙 쌓기로 인한 낭비와 부당한 차별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오로지 각종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등 관련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울시의 시도 역시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신학교 학점 외국어능력 등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선별하고 판단하는 데 핵심 정보다. 이런 정보를 이력서에서 모두 빼버리면 대체 뭘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말인가. 출신학교나 학점 등은 지원자의 끈기와 성실성, 성취동기 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정보다. 꼭 필요한 기본적 정보까지 일부러 보지 말라는 것은 웃기는 채용기준이다. 고용노동부가 2007년 이와 비슷한 표준이력서를 만들었지만 활용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직무 관련 활동, 자격 등은 표준이력서에 써 놓을 수 있게 했다. 또 채용 분야 특성에 따라 필요하면 외국어 능력이나 신체정보 등도 기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식의 예외를 인정하다 보면 결국 표준이력서는 전시용 서식이요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 된다.

정의(正義)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형식논리에 얽매인 단순 평등이라는 것은 오히려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사회발전을 가로막아 우리의 삶 전체를 하향평준화로 몰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