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재개 협상일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쁜 소식이라도 접한 듯 들뜬 분위기까지 엿보이는데 전혀 그럴 일이 아니다. 이번 회담은 햇볕과 퍼주기로 점철된 지난 시기의 오류와 파행을 모두 바로잡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우선 개성공단 투자계약서부터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개성공단은 가동 9년 만에 북의 일방적인 조치로 멈춰섰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공단을 중단시키면서 123개 남쪽 기업을 일거에 내몰아도 한푼 손실 보상도 없는 것이 지금의 구조다. 근로자 신변 안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남북간 투자협정부터가 잘못돼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의 법적 근거는 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후 6개월 만에 체결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다. 그런데 이 합의서는 남북간 경제교류와 협력을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하면서 분쟁해결 방법이나 피해보상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7조가 분쟁해결 조항인데 ‘당사자 사이에 협의의 방법으로 해결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이 없다.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언급하고 있지만 효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2004년 체결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역시 같은 장관급 합의문이지만 출입과 체류시 신변보장을 위반했을 때에 대비한 제재나 해법이 없다. 언제든지 휴지조각인 것이다. 이런 오류들이 모두 고쳐져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북측 기관이 아니라 진출 기업이 노무관리, 작업배치 등 현장 경영권을 가지는 것도 당연히 확보돼야 한다. 공단을 다시 여는 것에 앞서 신변안전과 투자보장에 대한 확실한 보장장치도 필요하다.

새로운 투자계약은 국제적 정합성을 갖춰야 하며, 법률적 제재가 가능해야 하고, 이행에 대한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협상에 앞서 2008년 박왕자 씨 피살 책임자, 개성공단 폐쇄 책임자를 북측이 먼저 문책하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사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야 북측의 진정성과 책임성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