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거목' 배상면 국순당 회장 별세
‘전통주의 거목’ 국순당 창업주 배상면 국순당 회장이 7일 오후 5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배 회장은 최근 몇 개월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이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세상을 떴다고 국순당 측은 밝혔다.

배 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사라졌던 한국 전통주를 복원하고 맥주·소주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국내 주류시장에서 전통주 분야를 산업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 회장은 생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우리 술을 만들기 위해 생의 마침표를 찍는 날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난 배 회장은 1948년 경북대 농예화학과에 입학한 뒤 미생물 연구반을 만들어 누룩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전통주는 배 회장 평생의 업이 됐다. 1952년 대구에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소주를 개발했으며 1960년에는 쌀을 원료로 ‘기린 소주’를 만들었다.

배 회장은 1982년 생쌀발효법에 의한 전통술 제조특허를 취득, 이듬해 배한산업(현 국순당)을 설립했다. 약주 연구에 매달려 1992년 백세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백세주의 인기에 힘입어 1994년 20억원이었던 국순당 매출을 지난해 115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배 회장은 전통주 전문회사를 키우기 위해 1996년 ‘배상면주가’를 설립했고 그해 경기 포천시에 전통술연구소와 전통술박물관을 열었다. 2002년에는 ‘배상면주류연구소’를 설립, 전통주 복원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순당 관계자는 “회장님은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도 매일 오전 9시 주류연구소를 찾아 오후 6시까지 유산균을 활용한 누룩 연구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전통주 시장을 이끌 후학 양성을 위해 2009년 보유하고 있던 주식 78억원어치를 전량 처분, 양조학교 설립에 투자하는 등 전통주 시장 활성화를 위해 65년간 열정을 바쳤다. 전통주에 대한 꿈은 세 자녀에게 이어지고 있다. 배 회장의 첫째 아들인 배중호 사장은 국순당을, 둘째 딸인 배혜정 대표는 배혜정도가를, 셋째 아들인 배영호 사장은 배상면주가를 맡아 국내 전통주 시장을 이끌고 있다.

두 아들은 배한산업 시절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배중호 사장은 누룩 쪽을 맡고, 배영호 사장은 생산라인을 담당했다. 배중호 사장은 ‘소품종 대량생산’을 중시한 반면 배영호 사장은 일본식의 ‘다품종 소량생산’에 무게를 뒀다. 1992년 배중호 사장이 배한산업을 중심으로 국순당을 창립하면서 ‘한집 살림’은 마무리됐다. 두 형제는 매주 만나 술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게 국순당 측 설명이다. 고인의 호는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의미의 ‘우곡(又)’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