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규제 철폐' 약속은 '뻥'…올들어서도 880건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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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규제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
5월말 기준 등록된 규제 1만4796건…DJ정부 초 3년간 감소 후 매년 증가
'경제민주화' 朴정부도 규제 급증
5월말 기준 등록된 규제 1만4796건…DJ정부 초 3년간 감소 후 매년 증가
'경제민주화' 朴정부도 규제 급증
#1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개정 ‘e러닝(전자학습) 산업발전법’을 공포했다. e러닝을 활성화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게 개정 법안의 취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규제가 숨겨져 있다. 이 법 20조는 공공기관이 e러닝 콘텐츠를 발주할 때 중소기업 참여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명문화했고 이는 대기업의 입찰 참여기회를 사실상 봉쇄한 규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2. 금융위원회는 작년 하반기 연매출 2억원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의 80%로 제한하는 여신전문업법 개정안을 내놨다. 내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지원하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그러나 카드회사 입장에선 시장경제 논리가 아닌 법으로 미리 정해진 수수료율을 강요받는 또 다른 규제다.
#3. 정부는 지난 3월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 등으로 하여금 판매가를 의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법안(액화석유가스 안전관리·사업법)을 만들었다. ‘LPG 가격을 안정시키고 업체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게 입법 취지다. 하지만 업계는 사실상 LPG 가격 결정권을 시장 자율이 아닌 정부가 틀어쥐기 위한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해마다 기업 규제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헛구호’였다는 얘기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올 들어서도 5개월 새 882건의 규제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9일 ‘우리나라의 규제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올해 5월 말 기준 등록규제 수가 1만4796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등록규제’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공공기관 내규 등을 제외한 법, 시행령, 시행규칙, 정부고시 등을 통해 만들어진 규제를 뜻한다.
역대 정권별로 분석해보면 김대중정부 초기 3년간 규제가 줄어든 것을 빼고는 매년 숫자가 늘었다. 김대중정부 때는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이 규제 완화를 요구한 결과 1998년 1만372건이던 규제가 1999년 7294건, 2000년 6912건으로 일시적으로 줄었으나 2001년 7546건으로 증가세로 반전됐다. 노무현정부 때도 매년 규제가 늘었다. 2003년 7707건이던 규제는 2006년 8084건으로 증가했다.
노무현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과 이명박정부 첫해인 2008년에는 각각 5166건과 5186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규제를 없앴기 때문이 아니라 규제분류 방식을 건수별 집계에서 산업별 대분류로 바꾸면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전경련은 밝혔다. 분류기준 변경에 따른 착시라는 설명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올해도 규제 숫자는 급증하고 있다. 작년 말 1만3914건이던 규제는 지난달 말 기준 1만4796건으로 882건 늘었다. 1338개의 규제가 새로 생겼고 456개가 없어졌다. 또 538개 규제가 이전보다 강화된 반면 완화된 것은 38개에 불과했다.
이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정치권이 각종 기업규제 법안과 노사관계 법안을 무더기로 입법 처리한 결과라는 게 전경련의 분석이다. 지난달에는 부당한 하도급 거래 때 최대 3배의 과징금을 매기는 하도급법 개정안, 화학사고 발생 때 해당 기업에 연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 굵직한 규제들이 신설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회 양극화와 반기업 정서 등 여론에 편승해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규제가 늘어나다보니 한국의 규제 경쟁력은 전 세계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위 안팎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규제 부담 정도’는 2009년 98위(133개국 대상)에서 작년 117위(144개국 대상)로 추락했다.
전경련은 “규제가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타당한지에 대한 점검은 미흡하다”며 “모든 규제를 대상으로 사회 변화에 뒤처지지 않았는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는 아닌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상당수 규제는 도입에 따른 영향 평가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의원 입법을 통해 만들어진다”며 “미국, 영국처럼 의원 입법에 대해서도 규제 영향평가와 규제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측정하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2. 금융위원회는 작년 하반기 연매출 2억원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의 80%로 제한하는 여신전문업법 개정안을 내놨다. 내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지원하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그러나 카드회사 입장에선 시장경제 논리가 아닌 법으로 미리 정해진 수수료율을 강요받는 또 다른 규제다.
#3. 정부는 지난 3월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 등으로 하여금 판매가를 의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법안(액화석유가스 안전관리·사업법)을 만들었다. ‘LPG 가격을 안정시키고 업체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게 입법 취지다. 하지만 업계는 사실상 LPG 가격 결정권을 시장 자율이 아닌 정부가 틀어쥐기 위한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해마다 기업 규제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헛구호’였다는 얘기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올 들어서도 5개월 새 882건의 규제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9일 ‘우리나라의 규제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올해 5월 말 기준 등록규제 수가 1만4796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등록규제’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공공기관 내규 등을 제외한 법, 시행령, 시행규칙, 정부고시 등을 통해 만들어진 규제를 뜻한다.
역대 정권별로 분석해보면 김대중정부 초기 3년간 규제가 줄어든 것을 빼고는 매년 숫자가 늘었다. 김대중정부 때는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이 규제 완화를 요구한 결과 1998년 1만372건이던 규제가 1999년 7294건, 2000년 6912건으로 일시적으로 줄었으나 2001년 7546건으로 증가세로 반전됐다. 노무현정부 때도 매년 규제가 늘었다. 2003년 7707건이던 규제는 2006년 8084건으로 증가했다.
노무현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과 이명박정부 첫해인 2008년에는 각각 5166건과 5186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규제를 없앴기 때문이 아니라 규제분류 방식을 건수별 집계에서 산업별 대분류로 바꾸면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전경련은 밝혔다. 분류기준 변경에 따른 착시라는 설명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올해도 규제 숫자는 급증하고 있다. 작년 말 1만3914건이던 규제는 지난달 말 기준 1만4796건으로 882건 늘었다. 1338개의 규제가 새로 생겼고 456개가 없어졌다. 또 538개 규제가 이전보다 강화된 반면 완화된 것은 38개에 불과했다.
이는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정치권이 각종 기업규제 법안과 노사관계 법안을 무더기로 입법 처리한 결과라는 게 전경련의 분석이다. 지난달에는 부당한 하도급 거래 때 최대 3배의 과징금을 매기는 하도급법 개정안, 화학사고 발생 때 해당 기업에 연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 굵직한 규제들이 신설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회 양극화와 반기업 정서 등 여론에 편승해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규제가 늘어나다보니 한국의 규제 경쟁력은 전 세계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위 안팎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규제 부담 정도’는 2009년 98위(133개국 대상)에서 작년 117위(144개국 대상)로 추락했다.
전경련은 “규제가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타당한지에 대한 점검은 미흡하다”며 “모든 규제를 대상으로 사회 변화에 뒤처지지 않았는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는 아닌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상당수 규제는 도입에 따른 영향 평가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의원 입법을 통해 만들어진다”며 “미국, 영국처럼 의원 입법에 대해서도 규제 영향평가와 규제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측정하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