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경의선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500여㎞의 육로와 철로. 경의선은 삼국시대부터 주요 도로로 쓰였다.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의 연행(燕行)길이었고, 상인들의 무역로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도 이 길을 따라 걸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쫓겨 의주까지 몽진한 선조는 ‘국경의 달을 향해 통곡을 하고/압록강 바람에 마음 아파라/조정 신하들이여, 오늘 이후에도/동서로 갈라져 다투겠는가’라는 시구를 읊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 길은 원래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1068㎞에 이르는 국도 1호선이다. 지금은 목포에서 판문점까지 498㎞, 북한의 판문점에서 신의주까지 444㎞로 나뉘어 있다. 2000년 경의선 도로 연결 공사에 따라 개성공단과 연결됐지만 올 들어 북한의 공단 폐쇄조치로 또 끊어졌다.

철도는 1906년에 개통됐다. 1896년 프랑스 피브릴사가 철도부설권을 얻었다가 자금을 못 구해 포기하고 1899년 대한철도회사도 이에 실패하자 1900년 정부가 나서서 서울~개성 간 선로 측량을 시작했다. 하지만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이를 강점, 불과 2년여 만에 군용철도를 완공했다. 하루 평균 730m의 선로를 부설했으니 노동력 강탈에 시달린 민초들의 원망도 그만큼 컸다. 1908년에는 신의주~부산 사이(경부철도)에 한국 최초의 급행열차가 운행됐고 1911년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국제 철도 노선도 연결됐다.

1930년대에는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직통열차가 생겼고 경의선과 만주철도, 시베리아철도를 경유해 영국 런던까지 가는 티켓도 등장했다. 고종 주치의였던 독일 의사 리하르트 분쉬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건설 중인 서울~의주 구간의 정거장도 가까운 곳에 생기게 되고 나중에는 의주에서 바로 시베리아철도로 연결돼 여기서 기차를 타면 베를린까지 16~18일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1900년대 초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분단 후 경의선은 38선 이남에 있는 서울~개성 구간에서만 단축 운행되다가 6·25로 중단되고 말았다. 2007년 남북의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범 운행에 이어 문산~봉동 간 화물열차가 운행됐으나 이듬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으로 그마저 끊겼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육로와 도라산역을 통과하는 철로가 지금은 다 막혀 있다. 막혔다 풀리기를 반복해온 경의선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다. 어제 ‘남북 당국회담’ 북측 대표단이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서울에 올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네티즌이 “그러면 기차를 타고 온다는 거냐”며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연 많은 경의선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