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회담’이라는 다소 애매한 성격의 회의가 오늘부터 이틀간 서울서 열린다. 회담을 하루 앞두고도 북측에서 누가 참석하는지, 의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회담이다. 우리측 대표인 통일부 장관에 맞춰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요청을 북측이 무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회담이라도 책임성 있게 이행되기 위해서는 형식의 적절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외교는 더욱 그렇고 그 상대가 핵공갈이나 퍼부어대는 북한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자면 권한과 책임의 지위가 대등한 장관들의 회담이어야 한다. 안건도 마찬가지다. 동네 골목길 모임조차 미리 의제가 확정돼야 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마주앉아도 쉽지 않은 것이 남북 간 협상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그저 만나기만 하면 다 되고, 그 다음에는 정삼회담이라도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것처럼 앞서 가는 일각의 막연한 낙관론도 그래서 걱정스럽다. 그 점에서 ‘북의 고집이 회담에서 서서히 나타나다’(NYT) ‘남북대화가 희망은 불러일으키지만 역사적으로는 난관에 부딪혀 왔다’(AP)는 외신의 냉정한 평가가 오히려 주목된다. 남북 간 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그간의 잘못된 형식과 절차를 차제에 확실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남북 간 장관급 회담만 해도 2000년 7월 이후 2007년 6월까지 모두 21차례나 열렸지만 북쪽 대표는 늘 우리로 치면 국장급 정도인 내각 책임참사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유화적 태도 혹은 퍼주기 노선에 북측이 단맛을 들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당장 이것부터 바로잡기 바란다. “북쪽이 시간, 장소는 물론이고 아예 우리 쪽에서는 누구누구를 나오라고 고압적으로 명령하듯 했다. 그러나 남북회담을 그런 식으로는 할 수 없었다”는 이명박 정부 고위 관계자의 증언은 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북 대화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이 그렇게 만들었다. 심지어 북측이 수틀리면 남쪽 상대방을 음해하고 당사자를 교체해버린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형식과 절차를 바로잡는 것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