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혹스런 日銀 총재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3일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난 후 총리관저에서 나오면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일본 금융시장은 경제의 긍정적인 개선 흐름을 반영해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투자자들은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도쿄AP연합뉴스
< 곤혹스런 日銀 총재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3일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난 후 총리관저에서 나오면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일본 금융시장은 경제의 긍정적인 개선 흐름을 반영해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투자자들은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도쿄AP연합뉴스
13일 일본 주요 신문들의 1면 기사는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날 정부의 산업경쟁력회의에서 밝힌 성장전략이 핵심이었다. 10년 내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을 6만달러로 높이겠다는 장밋빛 청사진도 다시 한 번 강조됐다.

그러나 일본의 금융시장은 아베를 외면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한때 달러당 103엔까지 갔던 엔화 가치는 93엔대로 급등했다. 알맹이 빠진 성장전략에 대한 실망이 주류였다. 이날 오전장 마감 무렵 아베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긴급 회동을 하고 “조만간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진화에 나섰지만 오후 들어 낙폭은 더 커졌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가 금융시장의 신뢰를 빠르게 잃어가는 모양새다.

○시장의 복수

아베 총리는 지난 5일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로 불리는 성장전략을 처음 발표하면서 법인세 감세 등 민감한 사안은 모두 뒤로 미뤘다. 개인에게 부과하는 세금(소비세)은 올리면서 기업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아베 내각이 경제 성장보다는 다음달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를 우선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감세 방안 등은) 올가을 다시 추진한다”는 모호한 말로 비켜갔다.

지난 11일엔 구로다 총재가 시장에 실망을 안겼다. 장기 금리가 급등하고, 주가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그는 “현시점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검토하겠다”는 말로 시장의 기대를 무시했다.

기쿠치 마코토 묘조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금융시장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 일본은행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와 구로다의 연이은 ‘실축’에 투자자들은 ‘매도’로 화답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은 시장의 이런 불만에 기름을 부은 요인이다.

○엔고와 주가 하락의 악순환 우려


일반적으로 주가 상승이 예상되면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는 오르게 된다. 주식을 사기 위해 환전하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주가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이 맞물리는 색다른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외 주식 투자자들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주식 매입과 동시에 외환 선물시장에서 엔화 매도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엔저·주가 상승’ 패턴은 이어졌다.

최근 들어 시장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이런 구도는 180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양상이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기업 실적 악화를 우려해 주식시장에 매도 주문이 쏟아지고, 주가 하락은 다시 엔고를 부추기는 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모로가 아키라 아오조라은행 애널리스트는 “2분기 결산을 앞둔 일본 수출기업들이 이익을 확정하기 위해 서둘러 달러 수출대금을 엔화로 환전하고 있는 것도 엔화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일본에 이어 개장한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 증시도 줄줄이 내림세를 보였다.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영업일 기준으로 8일 연속 하락하며 2100선으로 가라앉았다. 세계은행이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0.7%포인트 낮은 7.7%로 하향 조정하는 등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공포까지 겹친 탓이다. 대만 홍콩 태국 증시도 미국발(發) 악재 영향권에 들며 2% 이상 하락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이미아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