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죄 조항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이 흘러나와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되면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무죄 여부를 가리기 전에 ‘여론재판’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수사 정보에는 개인에게 치명적인 사항이나 허위 내용도 많아 개인의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피의사실공표죄로 특정인이 처벌받은 판례는 거의 없다. 1999년 초 검사가 구속 피의자의 혐의 사실을 자료로 배포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긴 했으나, 법을 관대하게 적용해 처벌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대법원은 △국민의 정당한 관심 대상이고 △정당한 목적이 있는 수사 결과를 △발표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공식 절차에 따라 △유죄를 속단할 수 있는 표현을 피해서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공표하면 형사처벌과 민사배상을 피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범죄의 주체가 수사권자이기 때문에 관련 수사나 기소에 착수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검찰과 독립된 수사기관이 따로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