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그레이 파워'…세대 뛰어넘다
한국 가요계에 ‘그레이 웨이브(gray wave)’가 밀려오고 있다. 아이돌 일색이었던 가요계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던 50~60대 가수들이 최근 잇따라 새 앨범을 발표하거나 콘서트를 열면서 재조명받고 있는 것.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종류가 예전보다 더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상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선 10~20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음악 시장에 40~50대 중장년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는 점에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조용필·들국화·문주란·심수봉…

그레이 웨이브의 ‘선봉장’은 ‘가왕(歌王)’ 조용필(63)이다. 지난 4월23일 10년 만에 발표한 19집 앨범 ‘헬로’는 CD 발매 35일 만인 28일 20만장을 돌파했다. 10만장 넘게 팔리는 음반이 1년에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인 현실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낸 셈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시작된 조용필 전국 투어 콘서트 역시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8일) 의정부(15일) 공연도 팬들로 꽉 찼다. 오는 29, 30일 대구 공연도 이미 매진이다. ‘헬로’ ‘바운스’ 등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수라고 생각하기 힘든 젊은 감각의 곡으로 중장년층은 물론 10~20대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문세(54)는 지난 1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5만명 규모의 초대형 콘서트 ‘대한민국 이문세’를 열었다. 조용필과 이문세 공연 모두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관객층이 공연장을 꽉 채워 눈길을 끌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형광봉을 흔드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들국화도 4월 원년 멤버로는 27년 만에 신곡 ‘노래야 잠에서 깨라!’ ‘걷고 걷고’를 발표하고 열흘 동안 ‘다시, 행진’이란 콘서트를 진행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도 1991년 발매된 라이브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라이브’를 재현하는 공연을 지난달 열었다. 이와 함께 CD 세 장으로 구성된 2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1966년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문주란(64)도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주란 끝이 없는 길’이란 특별 공연을 열었다. 앞으로 신곡을 발표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봄비’를 부른 박인수(66)도 16일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만났다. 심수봉(58)은 지난달 새 미니 음반 ‘나의 신부여’를 발매했다.

◆“세대 이어줄 수 있는 다리”

미국이나 영국에선 50~60대 뮤지션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롤링 스톤스, 브루스 스프링턴, 엘튼 존 등 1960~70년대 데뷔한 가수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 데뷔한 영국 유명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도 3월 신곡을 발표하고 영국 차트를 휩쓸었다. 반면 한국 가요계는 2000년대 이후 ‘노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이돌 편중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50~60대 뮤지션들이 잇따라 복귀하며 주목받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을 조용필에게서 찾고 있다.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그가 젊은 감각의 노래를 들고 나오면서 10~20대와 중장년층이 화합하게 됐고 동시에 조용필 ‘후광 효과’로 다른 뮤지션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진섭 팝칼럼니스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록 밴드 U2 콘서트장에 가 보면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조용필을 계기로 음악을 통해 각각 다른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브리지(bridge)’ 뮤지션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