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노사정위원회가 새 위원장 체제에서 잘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노·사·정 회의를 정상화하는 것부터 가능할지 극히 의문이다. 무엇보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노조 측은 툭하면 불참 아니면 중도 사퇴다. 얼마 전 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을 확정하기 위해 열었던 노·사·정 회의에서도 민주노총은 빠졌다. 노사정위는 외환위기가 절정이던 1998년 1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만들어져 지금의 4기까지 출범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렸던 사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러니 노사정위원회가 겉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시스템 자체를 되돌아봐야 한다.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법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노조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노동 현안이 한둘이 아닌데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노조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해 주려고 하니 노사 합의가 이뤄질 리 없고, 노·사·정 타협이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노조엔 노사정위 참여 자체가 정치적 투쟁수단이 돼버렸다. 오로지 자기 이익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참석과 불참을 무기로 삼는다. 노사정위가 말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결국 법의 적용을 막아 법치를 무력화할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욱이 노조의 기득권이 이미 정치에 들어와 입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앞뒤 안 가리고 쏟아내는 소위 경제민주화 노동법안들이 그것이다. 정년 60세 연장, 대체휴일제 도입, 근로시간 축소, 인위적인 구조조정 금지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온통 대기업 강성노조의 기득권을 확대하면서 기업에 노동비용 증가를 감수하라고 강압하는 법안들이다. 이런 판에 노사정위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란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 방식이든, 독일 하르츠 개혁 방식이든 노·사·정의 절실한 요구가 전제돼야 의미를 갖는다. 절박한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는 법치를 짓밟고 기득권을 지켜주는 방패막이에 불과하다. 지금 같은 노사정위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